[영화 감상문] '하나와 우진' :: 괴산의 새소식과 이야기

[영화 감상문] '하나와 우진': 2014년 5월 23일, 탑골의 작은 영화상영회 상영 작품/감독 장윤하; 2014.06.03 00:57 입력

탑골의 작은 영화상영회 
2014. 5. 23.
 
‘하나와 우진’
 
양영희
 
여름처럼 더운 한낮이 지나고 해가 질 녘, 탑골의 작은 마당에는 하나 둘 사람이 모이기 시작한다. 정원엔 마치 분홍 드레스를 닮은 작약이 예쁜 꽃몽오리를 피워 올리고 있고, 하얀 데이지와 보랏빛 목단도 절정을 이루고 있다. 저녁 새들도 한 식구가 되어 노래한다. 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소리도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 듯 울리고, 정원 한쪽에선 음식이 준비된다. 소시지를 굽고 두부와 김치, 볶음밥, 직접 만든 막걸리와 하우스 맥주...
 
영화상영회에 온 손님은 모두 감독이나 배우가 아는 사람이다. 손에는 저마다 먹을거리를 들고 잔치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잔디밭에 준비한 걸상과 작은 스크린, 기타와 앰프, 소박한 행사만큼이나 준비물도 고만고만하다.
 
오늘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탑골 영화상영회 날이다.
 
이번에는 장윤하 감독의 ‘하나와 우진’이란 작품을 상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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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겨울에 촬영해 여성영화제에 출품할 작품이다. 장 감독은 할 수만 있으면 해마다 한 편씩 영화제작을 하고 싶다고 한다. 이번 영화 제작비는 총 13만 원, 나머지는 모두 손수 작업하거나 아는 사람들의 재능기부와 ‘노 개런티’ 협력으로 진행됐다. 제작비만 놓고 보면 해마다 몇 편의 영화도 가능할 숫자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노력과 땀과 어려움은 숫자로 표기할 수 없다. 
 
도시에서 묻어 사는 삶이 가능한 장 감독이 굳이 괴산까지 삶터를 옮겨 자신의 색깔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면서 산 지는 몇 년 되었다. 장 감독은 영화도 만들고, 대안학교 수업도 하며,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또 지역의 예술가와 협력하는 일에도 함께한다. 장 감독 주변엔 늘 많은 사람이 있고, 많은 뜻 깊은 일이 진행된다. 장 감독은 삶은 풍족하나 잔고는 늘 비어있다. 그러나 사람 좋은 웃음을 살짝 띤 장 감독은 천사와 닮았다.
 

장 감독의 친구 ‘단한권’은 기꺼이 상영회를 위해 노래를 준비했다. ‘단한권’ 또한 직접 만들고 연주한 자신만의 음악으로 가수활동을 막 시작하고 있다. ‘익숙한 귀’라는 첫 번째 데모 시디 옆에는 작은 모금함도 걸려있다. 
 
‘멀리에’, ‘악수’, ‘둘리’...
 
‘단한권’의 음악으로 상영회는 훨씬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단한권’ 또한 가난한 예술가의 삶을 보여준다. 혼자서 작곡해 만든 노래를 연습해도 돈 때문에 음반은 내지 못한다. 그래서 ‘단한권’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제작한 시디를 들고 다니면서 자신의 음악을 소개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그리고 거기엔 어떤 어려움이 함께 따라다니는지 두 사람은 보여주고 있다. 두 사람의 삶을 알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오늘 여기 모여서 영화를 본다.
 
첫사랑은 언제나 풋풋하다. 아니 첫사랑을 기억하거나 바라보는 일은 그렇다.
 
‘하나와 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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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면서 저마다 자신의 마음을 전하려 하지만 우진은 하나에게, 하나는 종완에게, 종완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이 가 있다. 학교 운동장에서 만나기로 한 세 친구, 그러나 종완은 나타나지 않고 우진을 통해서 자신이 못 나오는 까닭을 전한다. 우진은 이 사실을 하나에게 숨긴다. 그렇게해서 만든 틈으로 하나와 함께하는 시간에 매달린다. 
 
하나가 타고 온 자전거, 하나는 우진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주며 시간이 흐른다. 겨울 하늘은 우진의 마음처럼 먹구름이 가득하다. 흐리고 바람도 불고 몹시 춥다. 하지만 우진의 마음은 하나에게 온전히 가 있는 탓에 그 시간이 절박하다. 영화는 운동장에서 자전거 배우는 일로 하루해가 진다. 그 시간은 ‘하나는 종완을 기다리고, 우진은 하나의 마음을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하나에게 ‘할 말 없니?’라는 우진의 간절한 질문은 ‘우진의 사랑이 더는 진척될 가망이 없음을 암시한다. 받아지지 않는 마음은 애달픈 일이다. ‘하나와 우진’은 더 진전되지 못하고 머무는 대부분의 첫사랑과 닮은꼴이다. 
 
이날 상영회는 음악과 영화와 사람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진 밤이었다. 사람 마음에 평화가 어떻게 오는지 느끼게 하는 밤이기도 했고, 사람과 사람이 아름답게 이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여기저기서 모두가 이렇게 잘 놀았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는 사람들과 자연과 함께하는 공간과 펼칠 수 있는 재능이 다 모였으면 좋겠다! 
 
서울이 아니어서 더 좋은 그런 기회가 곳곳에서 작고 예쁘게 펼쳐졌으면 좋겠다!
 
누구든 자기식대로,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여서 재밌게 노는 방법이 있을 테니 말이다! 

 
우리는 뒷풀이에서 해마다 영화상영회를 갖기로 했다. 마을 어르신을 위한 ‘옛 영화 상영회’도 기획하자고 했다. ‘단한권의 노래’도 아울러 계속 들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글을 쓰면서 시골에서 더 재밌게 잘 노는 일이 거대한 글로벌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작은 저항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상영회는 우치다 교수가 말한 ‘돈의 힘이 삶을 꿰뚫는 법칙’이 통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행사가 끝난 고요한 밤, 소쩍새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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