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례, 할머니 고맙습니다. :: 괴산의 새소식과 이야기

김,봉,례, 할머니 고맙습니다.: 할머니의 80년 인생에서 행복했던 기억의 한 자락이 우리와 함께였다는 그 사실이; 2013.06.10 10:34 입력

정연도(노올자老兀子) tobitj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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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IMG align=absMiddle src="http://gsnews.or.kr/PEG/13708279909762.jpg" width=480>
<DIV id=news_caption>▲ 지난해 겨울, 할머니와 마지막이 된 저녁식사 때 모습. 할머니는 내게 자급과 자족과 감사의 삶을 일러주셨다.</DIV></TD></TR></TBODY></TABLE>
 
차를 세우고 마당에 내려서는 순간 
지붕 위 밤하늘에 유성 하나가 긴 꼬리를 남기며 떨어졌다.
아마 얼른 들어가자고 팔을 채는 아내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한동안 그렇게 서 있었을 것이다.
 
익숙하게 좁은 방에 할머니가 누워 계셨다.
깡마르고 핏기 없지만 대장암 말기의 환자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편안한 모습이다. 
막내아들이 할머니를 깨웠다.
 
“어머니, 앞집 애기아빠 왔어요.”
 
앞집 애기아빠, 그래 할머니랑 나의 관계는 앞집 애기아빠와 거꾸로 앞집 할머니의 관계였다. 그 인연이 언제부터였나? 막내아들이 할머니를 깨우는 그 잠깐 동안 나는 할머니와 첫 만남을 보고 있었다.
 
지독히도 추웠던 2007년 1월 4일, 그날 우리 가족은 아무런 연고가 없는 충청북도 괴산의 작은 시골마을로 내려왔다. 나와 같은 나이를 가진 43년 된 시골집은 내가 코흘리개 시절에 살았던 초가집보다 더 옹색했지만 버리고 태우고 손봐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도와주러 온 친구 녀석들과 열심히 청소하고 있을 때 말없이 대나무 빗자루 한 개를 들고 건너와 청소를 도와주셨다. 별 말씀이 없었다. 혼잣말처럼 “에이구, 젊은 사람이 여서 우예 살라꼬...” 하며 묵묵히 청소만 하고는 고기 한 점 드시고 가라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댁으로 돌아 가신 게 첫 만남의 전부였다.
 
“끙.” 
신음소리 한 번 내고 할머니는 돌아누우셨다.
“어머니, 앞집 애기아빠 오셨어요.”
“으..응”
목소리가 얕다.
“앞집 애기아빠요.”
“누...구..”
내가 끼어들었다.
“할머니, 저예요. 애기엄마도 같이 왔어요.”
“으응...그래, 목소리...들..으..니..알겠다.”
힘겨운 듯 식혜 한 모금으로 목을 적신다.
 
할머니의 병은 대장암이었다. 불과 두 달 전에 발견했다. 뵐 때마다 명치 끝이 늘 답답하고 아프다 했을 때 그것이 당신 가슴에 묻은 큰딸에 대한 상처인 줄로만 알았다.
 
지난 겨울, 할머니 댁에서 저녁을 같이할 때 역시 워낙 식사량이 작은 분이니 잘 안드시는구나 했지 당신 몸 속이 그렇게 무지막지한 놈이 자리잡고 있는 것인지 그땐 몰랐다. 병을 발견했을 땐 이미 말기, 손쓸 방법이 없었고 그저 진통만 줄일 수밖에 없었단다. 복수가 차올라 임종을 준비하란 의사의 말에 집으로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았단다.
 
나는 할머니를 조심스레 안았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맨날 욕이나 해대는 할미가 그리 조아?” 
낮은 목소리만 또렷하다.
“예, 전 할머니가 좋아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그래, 우야든지 잘살아라.”
아내도 할머니를 안고 말한다.
“할머니, 좋은 기억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다. 인자 보고 싶은 사람 다 봤다.”
다시 할머니가 돌아누우셨다.
 
2007년 봄, 6년 묵은 밭을 개간하면서 시작한 농삿일은 초보인 우리 부부가 쉬이 감당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물어보면서 갈 수밖에 없는 힘든 여정이었다. 그때마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이렇게 저렇게 가르쳐 주었지만 호미를 들고 직접 건너와 몸으로 일러준 이가 바로 할머니였다.
“하이고, 이 국민학생들...”
혀를 차면서, 핀잔을 주면서도 가장 먼저 달려온 분이셨다.
 
‘잡초도 생명’이라며 책에서 읽은 대로 실천(?)해 헛골에 풀이 성성해졌을 때 ‘저 놈들이 뭘 몰러’ 하면서 호미로 풀을 메는 법부터 가르쳤고, 가을이 되어 풀씨가 날리기 전에 풀을 베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시기도 했다. 귀농의 여유는 낮잠이다고 다소 삐닥한 여유를 부릴 때 여지없이 건너오셔서 “젊은 놈이 몸뚱아리 아낀다” 호통쳐 나중엔 낮잠도 눈치보며 잤지만 궁핍한 시골살이를 겪지 않게 하려는, 세상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태도를 가르치기 위함임을 아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할머니 삶의 모습은 부엌과 밭둑에 있었다. 그리 크지않은 가마솥 세 개는 얼마나 자주, 오랫동안 할머니의 손길이 스쳐갔는지 그 반들거림이 말할 수 없을 만큼 유난히 광채가 났다. 그 광채 만큼이나 밭도 빛났다. 제초제를 쓰지 않았어도 할머니 밭엔 풀이 없었다. 그저 호미 하나로 온 밭의 풀을 다 잡으니 풀씨 하나 날아올 틈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 밭, 길 옆엔 꽃을 심어두었다. 고된 농사일하는 사람들, 잠시나마 꽃을 보고 쉬어가라고.
 
꽃을 사랑하는 만큼 모든 사물에 대해 존중해 주셨다. 모종을 키우면서 틈 날 때마다 “아이고, 이뿐  것들. 얼릉 커서 좋은 땅 시집 가야지.” 하시며 쓰다듬던 할머니와 가을에 밤을 줍기 위해 산에 올랐을 때 일이다. 앞서가던 내가 자꾸만 길을 막는 몇몇 마른 가지를 쳐내자 대뜸 “나무 꺾지 마. 누가 애기아빠 팔을 비틀고 부러뜨리면 좋겠어.”
마른 나뭇가지 하나 밟는 것도 조심하신 할머니다. 재래식 부엌에서 밥을 하건 군불을 넣든 삭쟁이와 죽은 나무만 주워와서 쓰곤 하셨다.
 
할머니 댁의 전기요금은 언제나 5천 원을 넘지 않았다. 고추 농사가 끝난 뒤 남들은 다 태우는 그 고추끈을 다 가져와 한 가닥, 한 가닥 이어 끈이 필요할 때 꺼내서 쓰는 검약함을 가진 분이셨다. 세탁기가 있어도 손빨래를 했고, 빗물을 받아 빨래를 했다. 설거지 한 물은 두엄 위에 뿌렸고, 한겨울에도 가마솥에 물을 끓여 사흘에 한 번은 목욕을 하신 분이다. 몸을 쉬이 놀리는 것도, 물건을 함부로 대하는 것도 모두 낭비라고. 그렇게 그 분은 주어진 자신의 몸을 최선을 다해 살려내셨다.
 
할머니는 13살 때 민며느리로 들어갔다고 했다. 말이 민며느리지 식모살이나 다름없는 생활이었고, 5년여 식모살이 끝에 머슴살이하던 지금의 할아버지와 비로소 신접살이를 시작했다고 했다. 큰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6.25동란이 터졌고, 갖은 고생을 해가며 횡성에서 피난길로 내려와 정착한 곳이 괴산이었다. 우리처럼 아무 연고 없이, 땅 한 뙈기 없이, 억척스레 몸으로 일군 60년 세월 속에 아들을 낳고 딸을 낳고 훌륭하게 키워냈고 작은 땅이나마 마련할 수 있었다.  
 
우리 부부를 찾을 때 할머니는 늘 양은사발을 썼다. 밭에 있든 아니면 잠시 집안에 들어와 있건 양은사발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반사적으로 할머니 댁을 쳐다봤고 그럴 때면 여지없이 할머니께서 손짓으로 우리를 부르셨다. 밥 먹으라고, 뭣 좀 가져가라고. 늘 우리가 받는 터라 어쩌다 부탁 하나를 해주실 땐 우리가 고마워할 정도로 우리는 많은 것을 받았다.
 
나는 할머니가 딴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언제나 자신의 이야기, 들에서 일하고 느끼는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산에 데리고 가 갖은 산야초를 알려주기를 즐겨하셨다. 누구를 흉보거나 원망하는 것은 더더욱 본 적이 없다. 아마도 할머니 인생에서 해본 가장 큰 욕은 어린 자식들이 무언가 잘못했을 때 했다는 “야이, 부자될 놈아!”가 아닐까 싶다.
 
유일한 소풍으로 기억되는 청남대 나들이는 할머니의 부탁으로 이뤄졌다.
“애기아빠, 우리 그 뭐냐 대통령 별장인가 하는데 있다며..”
“청남대요? 할머니 그럼 한 번 놀러 갈까요?”
 
그렇게 이뤄진 소풍은 청남대 곳곳을 다 둘러보고 점심도시락을 펼치며 절정에 이르렀다. 찬합에 가득 담긴 찰밥에 배추쌈에 김치 뿐인 초간편 시골밥상이었지만 고기를 구워먹던 주변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성찬이었다. 고기 반찬에 형형색색의 요란한 밥상이 부럽지 않았다. 초라한 시골밥상 도시락에 주눅들지 않았음은 주변의 그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의 손으로 일군 밥과 반찬과 한가로움을 누릴 수 있는 노력에 대한 당당함을 할머니께 배운 뒤라 가능한 것 이었다.
 
“형님, 어머닌 심하게 앓으시다 요 며칠간은 평온하셨어요. 아무래도 형님 댁과 인연이 남달라 뒤늦게라도 연락드린 겁니다.”
돌아누운 할머니 등만 쳐다보던 내게 막내아들이 말했다.
“고맙네요. 그래도 잊지 않고 연락주셔서...”

 
얼른 일어나셔야지요 하는 상투적 인사말은 생각조차 없었다. 이제 볼 사람 다 봤다는 할머니 말씀과 돌아누운 깡마른 몸에서 이것이 그 분과 이 생에서 마지막 만남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고되고 힘든 80년 인생, 이제는 조용히 내려 놓고 다른 세상에서 맘껏 뛰고 놀고 춤추시라 마음으로 빌고 또 빌었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스승이셨던 그 분,
김,봉,례, 할머니.
할머니는 4월 18일 오후 4시 처음 그 자리로 돌아가셨다.

이 글을 적으면서 할머니께 인사드린다. 
고맙습니다. 
할머니. 
할머니의 80년 인생에서 행복했던 기억의 한 자락이 우리와 함께였다는 그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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