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희의 생활글] 그해 여름 여행 :: 괴산의 새소식과 이야기

[양영희의 생활글] 그해 여름 여행: 2021.07.24 09:54 입력

‘누군가 달려와 내 모습을 보자마자 눈물을 왈칵 흘린다면 그 사람은 나를 얼마나 아끼는 걸까?’   <o:p></o:p>10여 년 만에 만난 엄마의 고향 친구 분, 광주 사시는 엄마 친구는 그랬다. 햇살이 엄청 뜨거운 날, 나와 남동생은 아프신 엄마, 7년 전 쓰러진 동생의 아내를 데리고 쉽지 않은 여행을 감행했다. 엄마의 병색이 심해져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고향 한번 모시고 가자고, 그리고 가는 길에 그렇게 보고 싶다던 친구분도 만나게 해드리자고 했다. 출발하면서 엄마 친구분께 전화를 드렸다. 오전에 출발한 우리는 1시 반이 넘어 광주에 도착했다. 친구분은 아파트 입구에 나와 계셨다. 멀리서도 엄마를 알아보신 친구분은 차 문을 열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리신다. 좋아하는 사람이 아픈 거는 그냥 알아본다. 내 지인들도 “여보세요?” 한마디만 듣고도 “많이 아프네!”하며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o:p></o:p>“아야 ~왜 이렇게 돼 부렸어! 참말로. 왜 이렇게 말라 부렀어?” 친구분을 모시고 식당으로 가려고 하는데 한사코 우릴 차에서 내리라고 하신다. 잘 걷지 못하는 엄마 손을 잡고 친구분은 당신의 아파트 입구로 들어선다. 내려오는 동안 아무 준비도 하지 말라고 전화 드릴 땐 ‘알았다’고 하시더니 어느새 식사준비를 하신 모양이다. 동생과 나는 과일과 고기를 좀 사고, 차에서 휠체어를 내리고 동생의 아내를 태우고 하느라 한참 뒤에 들어갔다. 햇살은 찬란하게 빛났고 땅에선 뜨거운 김이 올라왔다. 우린 아파트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그 더운 날씨에 토종닭을 두 마리나 사서 끓여놓고 우릴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밥상에선 모락모락 김이 나고 있었다. 맛있는 전라도 김치와 직접 키웠다는 고추, 친구분은 땀을 흘리면서도 우릴 챙겨주시느라 앉지도 않으시고 움직이신다. 입에 들어간 고기를 씹기도 전에 자꾸만 더 먹으라고 수없이 말씀하시며, 동생 입엔 직접 고기를 넣어주시기까지 하신다. 동생이 얼마나 힘들까를 아시는 거다. 엄마가 아프신 뒤로 받아보지 못한 ‘엄마 밥상’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렇게 건강하시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는 남원 사매면에서 나고 자랐다. 사매면에서 어릴 때 친구 10여 명이 아주 친하게 어울려 지냈다고 한다. 다행히도 친구분들은 아직 살아계시는 분이 많지만 하나 둘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만나시질 못한다. 젊은 날은 자식과 남편 때문에 친구를 못 만났고 지금은 당신들 몸이 그렇게 돼버린 거다. 이렇게 자식이 태워다 드려서라도 만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는 것만해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약속을 뒤로 하고 우리는 광주에서 남원으로 향했다. 친구분이 혼자 얼마나 더 눈물을 흘렸을지는 그림처럼 그려진다. 여름하늘은 참 예쁘다. 하늘은 엄마가 치매와 노환이 얼마나 심한지 모르고 동생의 아내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도 모른다. 그냥 흰 구름을 몰아다 수를 놓고 뭉실뭉실 떠가는 여름을 즐길 뿐이다. 담양을 지나는 길에는 목백일홍이 한창이다. 백일홍은 그 붉은 자태로 파란 하늘과 흰 구름 속에서 또렷하게 눈길을 모은다. 하늘과 구름을 내 것처럼 배경으로 놓고 멋 낼 줄 아는 붉은 백일홍을 난 좋아한다. 한차례 소나기를 만난 뒤 도착한 남원 광한루 앞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남원에 사시는 외삼촌 부부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 외삼촌은 우리 아버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다정다감하고 배려가 많아 언제 봐도 사람 좋은 향기가 난다. 우리 엄마인 누나를 애뜻하게 여기는 삼촌은 여행 기간 내내 엄마를 챙기신다. 전화도 여러 번 하시고 양계장으로 바쁜 상황에도 시간을 내서 엄마와 외할머니 부부 묘지에도 동행하신다. 다음날은 광한루를 산책하고 노고단 드라이브를 했다. 모두가 피곤하고 고단함을 느끼고 있을 때 노고단의 시원한 바람은 그야말로 치료제 같았다. 몸이 불편한 두 사람도, 운전하며 아픈 사람 신경 쓰느라 고생한 동생도 노고단에서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동생과 나는 여행 내내 서로의 짝을 살피느라 마음이 쉴 틈이 없었다. 엄마는 내 짝꿍, 동생과 그의 아내는 또 다른 짝꿍, 우린 어느 짝꿍이 더 힘들지 알 수 없다며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다. 노고단에서 바라본 하늘과 구름도 정말 예뻤다. 인간이 만든 그 무엇도 방해가 되지 않는 높이, 그런 곳에 서 있으니 자연이 주는 선물을 그대로 받을 수 있었다. 잠시, 어떻게 살면 좋을지 생각하기도 했다. 동생은 엄마의 고향마을 사매면과 우리가 자란 보절면을 모두 한 바퀴 돌아 보여준다. 기억력이 좋은 남동생과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니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람들도 생각이 난다. 우리가 다녔던 초등학교와 날마다 뛰놀던 언덕, 마루 끝에 앉아있으면 저녁놀이 예뻤던 시골집, 소나무 숲, 할아버지와 엄마가 뜨거운 여름에도 일을 했던 밭, 친구들 발소리, 놀이 소리 가득했던 골목,,,,,,.   <o:p></o:p>지금은 ‘알아볼 수 있는 얼굴도, 아이들도 없이 고요한 마을’을 보면서, 어쩌면 고향은 수십 년 전의 내 마음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5분 단위로 ‘괜찮냐’고 컨디션을 확인하며 다닌 여행이 끝났다. 집에 와서 편한 잠을 자면서도 컨디션을 물어줘야 할 엄마는 혼자서 어떤지, 남동생은 또 아내를 살피느라 고단한 몸을 얼마나 자주 일으키는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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