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롱고스의 ‘역사 수다’를 연재합니다. 느티나무통신은 언제나 지역 주민의 다양한 원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편집자]

오늘의 제목 ‘언어의 전환’은 철학에서 빌려온 개념이다. 더 쉬운 말이 없을까 고민해봤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말 바꾸기’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난번 수다부터 계속 철학적 수다를 끼워 넣고 있는데, 불가피하다. 왜냐하면, 역사도 어차피 인간의 생각이 만들어낸 학문이고, 이렇듯 생각하는 일의 기초를 담당하는 영역이 철학이기 때문이다. 구태여 이 영역에 이름을 붙인다면 ‘역사철학 수다’ 쯤이 될 것이다. 세상에, 역사도 재미없는데, 따분한 철학이 붙은 ‘역사철학’이라니!! 하지만, 이 시리즈를 따라오시면, 역사가 즐거워지고 철학도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언어의 전환’에 대해 조금 설명을 한 뒤에, 수다를 이어갈까 한다. ‘언어의 전환’은 20세기 초 소쉬르가 주창한 언어혁명의 다른 표현이다. 또 그 언어혁명이 사상계 전반에 끼친 모든 변화를 일컫는 말이다. 

15세기 후반에 태어나 16세기에 활약한 코페르니쿠스의 예를 들어보자. 코페르니쿠스의 활약으로 당시 서양의 세계관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던 ‘천동설’이 폐기되고, 태양이 우주의 중심인 ‘지동설’로 바뀌었다. 이런 세계관의 변화는 단지 물리학이나 천문학의 변화뿐만 아니라, 중세 유럽세계 전반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두고 ‘코페르니쿠스적 전환(Kopernikanische Wendung)’이라고 말한다. 이 전환은 단지 생각의 전환이나 이론의 교체에 그친 것이 아니라, 중세(대체로 카롤링거 왕조부터 16세기까지)에서 근대로 시대가 바뀌는 어마어마한 전환이기 때문에 저런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소쉬르의 ‘언어의 전환’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언어의 전환’에 대해 솔롱고스가 이해하는 내용은 이렇다.

문자기록은 원래의 생각이나 내용을 왜곡할 수 있다. 게다가 역사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자연과학에서 쓰는 E=mc² 이런 기호와는 다르다. 다른 학문도 그렇지만 역사 기록은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 역사가의 중요한 일중 하나가 바로 의심하는 것이다.

“비가 내리었다. 이보다 앞서 오랫동안 가물었는데, 임금이 왕위에 오르자 억수같이 비가 내리니, 백성의 마음이 크게 기뻐하였다.”(태조실록 1년 7월 18일 정유 1번 기사/출처 : sillok.history.go.kr)

이 기사에서는 기상현상을 태조의 즉위라는 정치 사건과 인과관계로 서술하고 있다. 오늘날의 역사는 이런 식으로 쓰지 않는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이 동남풍을 빌려 손권유비연합군이 조조의 대군을 이기도록 돕는 이야기가 나온다. 삼국지연의는 소설이다. 그런데 역사학계에서 칭송하는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저렇게 서술하고 있다. 이 문장만 본다면 태조가 공명과 다를 바 없다. 도대체 역사서술과 역사소설의 차이는 무엇이란 말인가? 따라서 저 문장을 역사서술로 다루기 위해서, 역사가는 의심이라는 채(screen)로 걸러서 해석한다. 역사가는 자신이 고찰하는 그 과거 시대의 채와 오늘날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에서 통용되는 채, 이 두 가지 채를 다 써야 한다. 역사가는 시대를 번역하는 마술사다.

역사가는 아니지만 솔롱고스라면 이렇게 쓰겠다. “태조1년 7월 18일에 태조가 즉위하였고, 그 날 비가 많이 왔다.” 그리고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백성들이 크게 기뻐했는지 누가 알겠는가? 통상 비가 많이 오는 날은 기쁜 날이 아닌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역성혁명에 성공한 세력들은 분명히 크게 기뻤을 것이다. 자신들의 마음을 백성들의 마음으로 확대 포장하여 역서서술에 혁명정권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구왕조인 고려의 왕족과 충신의 마음은 이랬을 것이다. “나라가 망하니, 하늘도 눈물을 흘리는구나.”

위 예와 같은 역사서술은 흔한 일이다. 따라서 역사를 읽는 독자는 ‘의심’에 익숙해져야 한다. 위 사례는 간단한 사례지만, 해석이 어렵고 격렬하게 논쟁하는 일 역시 흔한 일이다. 따라서 독자는 ‘논쟁’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오히려 ‘논쟁’ 속에서 재미를 느끼면 좋겠다. 그러면, 역사가 재미난 취미가 될 수 있다. 기록을 맥락에서 떼어내 글자 그대로(literally) 받아들이면, 남는 것은 ‘암기’뿐이다.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재미가 사라진다. ‘교과서’가 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종교 경전과 다름없게 된다.

‘언어의 전환’이란 거창한 제목으로 시작했는데, 고작 ‘의심’으로 마무리? 아니다. 거창한 ‘철학의 주제’도 이런 사소한 의심과 논쟁으로 시작할 수 있다. 이런 사례를 앞으로 더 살펴보려 한다. 뜻이 고정돼 있지 않은 언어가 만들어내는 역사서술의 혼돈 마술(chaotic magic). 다음은 ‘훈민정음’과 ‘언어의 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