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롱고스의 ‘역사 수다’를 연재합니다. 느티나무통신은 언제나 지역 주민의 다양한 원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편집자]

역사는 관계이다. 나와 너, 우리와 너희, 동맹과 적, 북방과 남방, 대륙과 해양, 산악과 하천 등등. 경계 너머의 또 다른 대상에 의해서 경계 내의 존재가 존재하게 된다. 뭔 소리냐고? 조금 딱딱하더라도 철학적인 사고 실험을 해보자.

로빈슨 크루소를 상상해보자. 로빈슨은 무인도에 혼자 산다. 로빈슨이 말했다. “난 잘생겼어.” 그런데 이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들어줄 다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 자기 말고 한 사람은 더 있어야 자신이 잘생겼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 혼자서는 의미를 만들어낼 수 없을뿐더러, 따라서 아무런 견해도 생겨날 수가 없다. 내 생각이 남의 머리로 전달될 때만 견해가 가능하다. 데카르트가 했다는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존재한다.”는 맞는 말이다. 근데 어쩌라고? 혼자 존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신의 위대한 철학을 전달할 상대가 없는걸.

앞으로 독자 여러분은 이 의미를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에서 대부분의 논의는 ‘관계’가 생략될 수 없음을. 그리고 오늘의 주제는 ‘지도’이다. 인간은 모든 행위를 땅 위에서 행한다. 역사를 지겨운 학문으로 기억하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이유는 대한민국의 역사교육이 문자 중심으로 이뤄지며, 그것도 한반도 지도만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지도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역사책의 모든 얘기들이 뜬구름으로 느껴질 것이다. 아무리 어여쁜 새싹이라도, 아무리 향기로운 꽃이라도, 아무리 새콤달콤한 열매도 뿌리를 통해 땅과 이어져 있어야 한다. 위대한 영웅의 이야기도, 고달픈 민중의 삶도, 처절한 전쟁도, 찬란한 건축물도, 경지 정리된 논과 밭들, 모두 땅 위에서 이뤄졌다. 그런데 지도를 보지 않고 어떻게 역사를 논하겠는가? 그런데, 한반도 주변의 다른 민족과 관계설정 없이 우리 역사를 로빈슨크루소의 독백처럼 가르친다면, 그 역사가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자, 이렇게 떠들지만 말고 지도를 보자.

일선 학교에서 많이 사용하는 만주와 한반도 지도이다. 벌써 관계가 표시되어 있다. 바다와 육지, 산과 강, 그리고 지역이면서 나라인 이름들.

하지만 만주가 작게 표시됐다. 그래서인지 송화강이 왜곡됐다. 궁금한 독자는 확인해보길.

다음 지도를 보자.

이 지도에서 한반도와 만주가 보이는가? 유라시아 전체를 바라보니까 중국이 중심이기는 해도 완전히 중앙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중국도 우리처럼 변두리가 아니라고는 못한다. 인도는 확실히 변방이다. 유럽은 데리다의 표현을 빌리면, 그냥 아예 거대한 곶(cap:바다 쪽으로 돌출된 육지, 예: 장산곶, 호미곶, 베르데곶, 희망봉)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지도는 위쪽이 오무려진 구드도법에 가깝다. 통상 많이 사용하는 메르카토르도법의 지도는 극지방이 너무 왜곡된다. 따라서 앞으로 필자는 계속해서 이 지도를 사용할 것이다. 현대는 인공위성으로 지구를 관찰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가? 그럼 다음 지도를 보자.

이 지도는 2번 지도에 몽골제국의 영역을 필자가 색칠한 지도이다. 철령 이북을 몽골에 빼앗긴 고려의 모습이 보이는지? 지도에 익숙한 독자라면, 서쪽으로는 헝가리대평원으로부터 동으로는 연해주까지 아우르고, 남으로는 인도, 북으로는 시베리아의 툰드라 지역과 경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지도에는 저렇게 표시할 수 있어도, 실제로 울타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해서 그럴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툰드라 이북 지역은 거의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었고, 인도와 사이에는 히말라야 산맥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그러니까 자연 그대로가 장벽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까 항복은 했지만, 살아남은 고려가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익숙한 1번 지도에서는 만주가 광활하다. 왜냐하면 척도가 한반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번 지도를 보면, 만주는 그렇게 광활해 보이지 않는다. 모든 학문은 상대적인 시선에서 관찰해야 한다. 형용사 ‘광활한’은 비과학적인 단어이다. 따라서 이런 표현은 자제하도록 할 것이다. 중국제국이나 또는 적어도 금나라 정도는 되어야 광활하다고 할 것이다. 3번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역사상 진정한 세계제국은 몽골제국 정도이다. 다시 말해서 유라시아의 관점에선 몽골제국 정도가 아닌 국가 또는 세력은 솔직히 다 변방이다.

변방이라니까 왠지 초라하게 느껴지는가? 그럴 필요 없다. 중세까지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구는 태양계의 변방이다. 그리고 그 변방성이 계속 확장되어 확인된다. 어떻게? 태양계도 알고 보니 우리 은하의 변방이었다. 우리 은하라고 변방이 아닐까? 국소은하단의 부분이고, 이 국소은하단은 거품구조의 대은하단 일부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나 또는 우리를 규정하려면, 남 또는 너희가 필요하다. 오히려 역으로 남이 있어야만 나를 규정할 수 있다고 해도 좋다. 따라서 한민족의 역사를 쓰려면, 주변 다른 민족의 역사를 함께 고려해야만 한다. 한반도 주변의 여러 민족은 중국의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의 한족, 흉노, 동호, 오환, 동이, 부여, 고구려, 삼한, 읍루, 숙신, 말갈, 물길, 거란, 계단, 여진, 만주, 선비, 조선, 왜, 일본, 탐라, 우산국, 류큐 등이다.

관계를 살펴보려면, 당연하게도 한반도보다 더 큰 지도를 봐야 한다. “우리는 발달한 민족이다.”고 주장하려면, 주변의 발달하지 않은 집단과 비교해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 모든 역사현상을 지도에 표시할 때, 그 현상을 포괄할 수 있는 넓은 지역의 관계 표시가 가능한 큰 지도를 사용할 것이다.

한반도의 역사는 한반도만의 역사가 아니라, 유라시아 전체 역사의 부분역사이다. 중국도 마찬가지, 유럽도 마찬가지다. 부분을 떼어 놓으면 모든 설명이 흐트러지게 된다. 우리 몸에서 왼손을 잘라내면, 그 왼손이 독자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뼈, 근육, 피, 신경 모두가 부분만이 아닌 것이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높이 올려서 역사를 보도록 하자.

다음 수다는 수다②에서 언급했던 것을 조금 확장해 볼 것이다. 역사는 인간의 문자를 통해 기록된다. 그런데 문자와 언어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말과 글은 미묘하게 다르다. 지도를 바꿔서 봤듯이, 역사를 기록한 글에 대해 의심해봐야 한다.

‘언어의 전환(linguistic tu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