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롱고스의 ‘역사 수다’를 연재합니다. 느티나무통신은 언제나 지역 주민의 다양한 원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편집자]

“아니, 이 양반아! 민주주의는 정치체제의 한 종류인데, 그걸 역사에 갖다 붙이다니. 견강부회 아냐?”

이렇게 반문할 사람이 많을 텐데. 그렇다면 지난 수다①의 후반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난 글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역사는 역사가의 역사상이다. 따라서 역사가 정확하고 과학적인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자료와 증거, 다른 사람의 관점과 끊임없이 투쟁하고 종합해 검증하면서 나아가야한다.”

역사는 얼어붙은 과거가 아니라, 그 과거에 대한 생각과 이미지의 종합이다. 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역사적 사건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물론 타임머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모든 영역을 훑어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잘못하면, ‘백 투 더 퓨처’란 영화처럼 과거를 간섭해서 역사를 왜곡할지도 모른다.

대체로 역사의 시작을 논할 때, 동아시아의 경우 사마천의 ‘사기’(史記)부터 그리고 서양의 경우 헤로도토스부터 시작한다. 그 이유는 이 두 위대한 역사가에 의해 역사가 그저 단순한 연대기를 뛰어넘어 학문의 영역으로 들어섰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많은 독자가 역사교과서 뒤에 있는 연표를 보았을지 모르겠다. 또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과 같은 조선왕조의 왕계표를 외웠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런 정도의 기록은 고대 이집트나 고대 중국의 하(夏) 상(商) 주(周) 같은 왕조도 행했던 일이고, 그런 것을 역사라고 말하지 않는다. 적어도 “태조 이성계가 왜 고려왕조를 멸망시키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를 창업했을까?” 같은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것이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역사서술(historiography)을 사마천과 헤로도토스가 시작했다는 점에서 위대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위대하다 하더라도, 그런 위대한 역사서술의 시작이 이 두 사람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이들이 살았던 시대 이전의 역사는 오늘날의 역사서술에 비해 아쉬운 점이 많다. 그것은 이 고대의 역사서술이 오늘날에 비해 수준이 떨어진다는 말이 아니다. 사마천이 미처 돌아보지 못한 사건이 있었을 것이고, 헤로도토스가 기록하지 못한 일이 많이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비유하자면, 베링열도를 보았을 때 섬이 분명히 줄을 지어 있지만, 섬과 섬 사이에는 광대한 바다가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인 것이다. 이렇게 서술되지 못한, 마치 광대한 바다와 같은 부분이 오늘날 역사학의 관점에서는 상당히 서술되지 못한 것으로 평가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기로 하자. 사마천 한 사람만 논하더라도 시리즈의 몇 편을 도배해야 가능할지 가늠할 수가 없다.

그저 솔롱고스가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사마천 시대에는 자신 이전의 2천 년 이상의 역사를 사마천 혼자서 썼으나, 후대의 역사는 더 많은 사람이 역사서술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예를 들어, 약 1,500년 뒤 조선이라는 왕조의 500년 역사를 서술하는 데에는 최소 수백 명이 관여했다. 못 믿으시겠다고? 그럼 어디 따져보자. 태조부터 철종까지 22대, 따라서 22개의 실록이 존재한다. 고종과 순종은 왜 빼냐고? 곰곰이 생각해보자. 태조실록은 태종대에 편찬했다. 정종실록과 태종실록은 세종대에, 이런 식으로 가다가, 불행히도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일제가 편찬했다. 그래서 현대 한국사학계에선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의 사료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다시 돌아가서, 실록청이 설치되면, 당상과 낭청이 임명되고, 낭청은 1인에서 5인 사이를 등용한다. 최소로만 잡아도 실록청에만 3인이 관여했다. 실록 편찬에 필요한 자료는 사초, 승정원일기, 경연일기, 일성록 등이었다. 사초는 사관이, 승정원일기는 승정원 당상이 기록한다. 사극을 유심히 본 독자라면, 왕과 신하가 의논할 때, 구석에서 책상을 놓고 말은 안하고 계속 적기만 하는 신하를 본 적이 있을 텐데, 그이가 사관이다. 그리고 사관과 승정원의 신료는 꽤 자주 교체되었다. 최소로 잡아서 사관 3인 승정원 당상 3인만 잡도록 하자. 벌써 9인이다. 게다가 정조와 같이 뛰어난 정신력을 소유한 왕은 자신이 직접 기록을 남겼다. 어쨌든, 9×22=198. 최소 수백 명이 관여했던 것이다.(이건 순전히 솔롱고스가 조선시대 전공자가 아니라서 나온 숫자다. 틀림없이 이 인원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대한민국은 1919년을 건국으로 잡더라도, 채 100년이 되지 않았는데, 그 역사를 서술하거나 공부하는 사람이 몇 명일까? 전국 대학의 사학과가 최소 50개라고 하면, 정원을 30명만 잡아도 1년에 1500명이 잠재적으로 역사를 논하거나 서술할 수 있다. 그리고 일선 중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전에 이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감안하면 모르긴 몰라도 수천 명이 훌쩍 넘을 것이다. 오죽하면, 시골에서 밭 가는 지아비에 불과한 그것도 서양사 전공의 농부가 수다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논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서술하는 또는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에 한정되지 않는다. 외국의 연구자도 소수지만 있다. 그러니까 역사학계를 단순하게 표현하면 이렇게 표시할 수가 있다.

“1→수백→수만”

게다가 이렇게 서술된 역사의 독자를 감안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가히 폭발적이라 할 만하다.

‘역사가 역사상’이라면, 이제 역사를 읽은 사람이 대한민국에서만 수천만 명이 넘는다고 할 때, 수천만 개가 넘는 ‘역사상’이 존재한다고 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이 수천만 개의 역사상 가운데, 어떤 역사상이 주류 역사상이 될까? 답은 뻔하다. 다수의 역사상에 부합하는 역사상이 주류가 된다. 이렇게 다수의 지지를 얻으려면, 그 역사상은 엄청난 사료의 검토와 고고학의 증거, 수많은 다른 역사상의 도전을 이겨낸 역사상이어야 할 것이다.

어떤가? 민주주의 정치와 비슷하지 않은가? 역사를 서술하는데, 여론을 수렴하고 다수의 지지를 얻으려는 노력이 있는 것이다. 이제 역사가는 일반인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추론과 연구만으로 역사를 서술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렇게 역사의 민주화가 진행되고 있다. 여전히 의심이 풀리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자. 만약 역사의 민주화가 역사를 왜곡했다면, 이런 역사서술은 금세 좌절을 맞고 사회에서 퇴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민주주화가 대세다. 오히려 대중과 독자의 피드백을 받아들였더니, 역사가 더욱 발전하고 정교해지고 과학적이 되었다.

정치의 민주화도 마찬가지다. 정치의 결정에 대중의 선택과 여론을 받아들였더니, 그 사회가 더욱 발전하고 정교해지지 않았는가? 다시 말해서, 역사는 사회의 발전과 동떨어진 학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회가 민주화하면, 역사도 민주화한다. 사회가 권위주의를 용인하면, 역사도 위계적으로 서술된다. 사회가 독재의 통치를 받으면, 역사는 검열 당한다. 국가가 제정이면, 역사는 황제의 역사가 된다. 국가가 조선왕조라면, 역사는 사대부의 역사가 된다. 그 국가가 식민지면, 역사는 식민주의 정당화의 역사가 된다. 그런데 그 국가가 독립을 쟁취하면, 그 역사도 독립을 쟁취한다. 국가가 민주주의 국가가 되면, 역사도 민주화한다. 최근 대한민국에서는 ‘국정교과서’를 추진하고 있다. ‘검인정’을 ‘국정’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이렇게 표시할 수가 있다.

“복수→단수”

역사가 뒤로 가고 있다. 대중과 독자의 피드백 따위는 필요 없다는 선언이다. 게다가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는 사람들의 전공이 거의 대부분 역사 비전공자들이다. 양심을 지닌 역사가로서는 도저히 참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난 수다①을 상기해보자. 다른 사람의 시선과 관점을 배제하는 것은 아주 오만한 태도이고, 그 결과는 왜곡과 위험을 초래한다. 내가 직접 목격한 단 한 순간의 표정만을 고집하는 자세다.

“역사는 움직인다. 민주주의의 방향과 방식으로.”

이제 부족하지만, 준비를 마쳤다. 그럼 어디 이제 움직여보자! 다음 수다의 제목은 ‘지도 바꾸기’(Map Change)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