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솔롱고스의 ‘역사 수다’를 연재합니다. 느티나무통신은 언제나 지역 주민의 다양한 원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편집자]

2006년경 한 광고문구가 널리 퍼졌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이 문구가 최근 한 여배우의 근황과 함께 다시 퍼지고 있다. 난 연예기사에는 관심이 없지만 이 글의 제목을 "역사는 움직이는 거야?!"로 정한다.

앞서 언급한 그 배우는 '움직이는 것'을 확신한 듯했는데, 이 글의 제목에는 ‘?!’ 부호를 넣었다.

"역사가 움직인다고?" 의문을 표할 사람이 있을 터인데, 이제부터 그 까닭을 설명한 뒤 이 글을 서문으로 삼은 일련의 조금은 긴 수다를 연속해서 떨어보고자 한다.

1.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

2.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역사(the historian and his history)의 대화

위 두 명제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이 에이치 카(E.H.Carr)의 유명한 명제이다. 특히 1번.

2번 명제에 대해서는 부정확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즉, 소유격 his를 무시해서 해석하면 안 된다. 이 명제를 조금이라도 받아들인다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역사는 움직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길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거칠게 말해서 역사는 '역사가의 역사상'이라는 것이다. 과거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을 기록한 인간의 결과물은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불완전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역사가는 자신의 역사상, 역사가가 머릿속에 그린 형상을 역사의 사실에 가깝게 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예를 들어보자. “1987년 6월 10일 수많은 시민들이 광장에서 ‘독재타도’를 외쳤다.”는 역사의 사실이 있지만, 이 역사의 사실에 대한 해석은 역사가마다 다르다. 일부는 '위대한 시민의 민주혁명' 또는 '민주화 운동'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이들은 '좌경용공 학생들의 반정부 데모'로 묘사한다. 왜 일까? 인간의 시각은 하나의 대상에 대해 전체를 한꺼번에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이를 필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자 한다.

인간 인식의 한계 때문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자연과학에서도 이미 100년쯤 전에 최첨단 영역인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인식의 한계를 받아들였다. 이른바 '불확정성 원리'다.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결정할 수 없다! 그런데도 아직도 인문학의 영역에선 절대 진리를 상정한 수많은 담론이 존재하며, 역사학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사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역사를 나는 '역사주의'로 칭하고자 한다. 이는 대체로 칼 포퍼의 '역사주의'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주로 독재나 권위주의 체제를 가진 사회에서 널리 퍼져 있다.

역사가 결국 역사가의 역사상이라면 이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세상에 역사가는 많다. 따라서 역사상 또한 그만큼 존재하게 된다. 물론 주류해석으로 받아들여지는 역사상이 어렴풋 존재한다. 하지만 그 역사상은 기본이 생각의 결정체이므로, 움직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주류해석이 있으면, 이에 도전하는 해석이 존재하고 해석 사이에서 무수한 전투가 벌어진다. 그런데 이 싸움은 끝이 없다. 왜냐하면 연구가 계속 진행되고, 새로운 증거가 나오며, 그에 따른 또 다른 해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전의 '대화'에 또 다른 '대화'가 이어진다. 또 현재가 과거와 연결된 것이라면, 지금도 계속해서 수많은 현재가 무한한 과거에 보태지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등산을 하다보면, 시작할 때의 풍경이 정상으로 다다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현재가 과거 자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과거의 상은 끊임없이 바꾸는 것이다.

게다가 인간의 기억은 불확실할 때가 많다. 따라서 이를 보정하려면 소수의 기억이 아닌 최대한 많은 사람의 기억과 기록을 긁어모아야 한다. 역사의 실체에 도달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망각의 늪을 지나야 하고, 왜곡의 골짜기를 빠져나가야 하고, 편견의 산을 넘어야 하고, 망상의 굴을 벗어나야 하고, 진실의 빛을 쬐고, 겸손의 들꽃향기를 만끽하고, 성실의 열매를 따야 한다.

역사는 고정된 과녁을 맞히는 양궁이 아니라, 말을 타고 사냥감을 노리는 기사(騎射)다. 내가 쏘아 맞힌 사냥감의 표정은 그때 한 순간뿐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기억하는 표정을 덧붙여야 한다. 그것도 많은 사람의 표정을. 말 탄 사람과 그냥 서 있던 사람의 기억까지도 말이다.

감히 말한다.

“역사는 움직인다.”

위 명제는 인간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의 명제이며, 고정된 상을 숭배하지 않고 성실하게 목표를 좇겠다는 맹세의 명제이고, 따라서 과학의 명제이다.

하나의 역사상은 언제든 도전받을 수 있고, 새로워질 수 있다. "과거는 그대로겠지만, 역사는 움직인다." 그리고 움직여야만 한다. 믿기 힘들겠지만, 이런 역사관은 민주주의의 성장과 관련이 있다.

다음 글의 제목을 알린다. "역사는 민주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