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3일 더불어민주당에서 농정공약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기에 들렀다. 이 자리에서 생각나는 대로 몇 마디를 했는데 잊기 전에, 또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한 부분은 보완해서 적어둔다.

우리나라는 ‘관념’론이 문제이다.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다른 나라 사람이 만들어놓은 관념을 가지고 우리 현장을 본다. 그러니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책상머리 정치’ ‘책상머리 행정’이라고 비판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제가 98년에 귀농해서 귀농의 이런저런 문제를 제기했다. 저 말고도 많은 사람이 지적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귀농정책이 나온 게 2009년이다. 그 정책도 현장을 제대로 반영한 정책은 아니었다. 물론 농수산식품부의 의견이나 예산안이나 정책은 힘 있는 기획재정부에게 밀릴 것이다. 하지만 저는 돈이나 재정의 규모를 말하는 게 아니다. 적은 예산이라도 정확한 방향을 잡고 있느냐이다. 그러려면 현장의 소리를, 현장의 흐름을 정확하게 느끼고 있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말이다.

현장을 느끼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정책을 세우니 방향이 잘못된다는 말이다. 신영복 선생님의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액자를 벽에 걸려는 사람은 액자가 똑바른지 아닌지를 아랫사람에게 물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또 평생 집을 지은 노인은 집을 아래서부터 그린다는 이야기다. 집을 짓는 순서대로. 집을 지붕부터 그리는 사람이 갖고 있는 집에 대한 관념을 질책하는 이야기다. 또 평생 아이들을 가르쳤던 이오덕 선생님은 늘 아이들에게 ‘보고 또 보고, 듣고 또 듣고’를 가르쳤다. 사물과 세상을 구체로 느끼지 못하면 관념이 잘못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성훈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장관으로 있을 때 모든 실무는 차관에게 맡기고 장관은 현장의 이야기를 들은 걸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김 장관은 현장에 와 닿는 일을 많이 했다.

그러나 이미 교과서만 달달 외워서 점수를 잘 받았던 사람들로 꽉 차 있는 지배세력을 어떻게 단번에 바꿀 수 있겠나? 결국 길게는 교육을 바꾸는 길밖에는 없지만 짧게는 조직으로 보완하는 방법밖에 없다.

조직을 삼각형 구조로 만들면 어떨까? 정부 각 부서의 장관은 통합할 줄 아는 사람으로, 1차관은 관념이 뛰어난 사람으로, 2차관은 현장을 잘 아는 사람으로.

이런 식으로 교육구조도 바꾸면 어떨까? 어떤 과목의 연구부장은 통합하는 사람으로, 1연구과장은 관념이 뛰어난 사람으로, 2연구과장은 현장을 잘 아는 사람으로.

우리나라의 모든 교육과 조직을 이렇게 바꾼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관념에서 벗어나 현장에 바탕을 둔 정책을 세우고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관념이 뛰어난 사람과 현장을 잘 아는 사람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새해 새날 아침 뜬금없이 상상해보는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