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을 맞아 늘 그렇듯이 올해도 반짝 시끄럽다. 나도 한 마디 안 하면 미안한 느낌이 들 정도로. ‘그래, 나도 한 마디 하자!’

하나.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한글을 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최현배 선생이 비행기를 ‘날틀’로 쓰자고 했다는 말도 초등학교 때 선생님한테 들었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날틀이라고 쓰면 좋을 텐데 왜 안 쓰지?’ 하고 생각했다.

하나.

대학을 다닐 때 우리 학교에는 한글 쓰기 운동을 하는 모임이 있었다. 이 모임은 날마다 학생이 학교 정문에 들어서면 볼 수 있는 자리에다 우리가 잘못 쓰는 말을 적어 팻말을 세웠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게 있는데 ‘애매하다’와 ‘모호하다’를 구분해서 우리가 잘못 쓰고 있는 점을 가르쳐 주었다. ‘애매하다’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다는 뜻이고, '모호하다'는 어떤 사건이나 사실이 분명하지 않을 때 쓰는 말이라는 것이다. 요새 사람들이 흔히 ‘애매모호하다’고 말하는데 잘못 쓰는 말인 것이다.

하나.

한글 쓰기를 고민하다 보면 말을 만들어 보기도 한다. 나는 대학 1학년 때 ‘가랑’이란 말을 만들어 썼다. ‘강’의 옛말이 ‘가람’인데 어딘지 좀 딱딱한 느낌이 들어서 차라리 ‘가랑’이라고 쓰는 건 어떨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말 만들기가 잘못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먹을거리’를 ‘먹거리’로 쓰는 것도 잘못이다.

하나.

내가 말과 글에 관심이 있었던 시기는 대학교 1학년 때로 끝났다. 그리고 10여 년이 흐른 뒤 이오덕 선생의 책을 보면서 우리 말과 글에 대해서 많은 의문점을 정리할 수가 있었다. 내 방식대로 정리하면 이렇다.

①한자나 일본어나 영어 낱말을 우리말로 바꾸는 운동은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운동은 우리 말법을 지키는 운동이다.

②배운 어른의 말법이 엉망이 되었다. 차라리 아이나 학교를 다니지 않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말이 깨끗한 우리말이다.

③지식인이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 조선 시대 때는 양반이 어려운 한자를 쓰면서 백성을 무시했고,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어를, 해방 뒤에는 영어를 쓰면서 국민을 무시하고 있다. 이런 지식인의 행위 밑바닥에는 뿌리 깊은 ‘사대주의’가 깔려 있다.

하나.

“방송 말의 절반가량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내가 시골에 들어와서 들은 말 가운데 굉장히 충격을 받은 말이다. 국민이 알아들을 수 없게 하면 통치하기가 쉬워서일까? 보통 사람이 못 알아들어야 지식인 노릇 하기가 쉬워서일까? 우리나라에는 외국어나 외래어에 대해 연구하고, 우리말로 어떻게 쓸지를 연구하는 기관이나 연구자는 과연 있는 걸까?

하나.

작년인가 ‘임꺽정’을 다시 읽으면서 홍명희가 소설을 쓰던 일제 강점기 때보다도 ‘우리말이 참 드세졌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자면 ‘두덜대다’가 ‘투덜대다’로, ‘우두머니’가 ‘우두커니’로 바뀐 것이다. 세상이 거칠어져가니 당연한 현상이긴 하겠지.

하나.

최근 3년 동안 느티나무통신과 글쓰기모임에서 글을 고치면서 늘 반복해서 고치는 몇 가지가 있다. 참고로 정리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①____적(으로): 전체적으로, 마음적으로, 치욕적인, 적극적인, 구체적인...

고치기 일본 말법의 영향이다. ‘적’을 뺀다, ‘적’을 빼고 ‘의’를 넣는다, ‘적’ 대신 ‘스러운’을 넣어본다...

②____의: 시골에 와서의, 감옥으로부터의, 나의

고치기 일본 말법의 영향이다. ‘의’를 빼고 시골에 와서 한, 감옥에서 한, 내 또는 내가...

③복수형 ‘들’/아이들도, 다른 사람들도, 친구들과 함께

고치기 영어 교육의 영향이다. 우리말에는 복수의 의미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도 굳이 쓰고 있다. 그냥 빼도 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도, 다른 사람도, 친구와 함께

④과거형 ‘었’/다녔었거든요, 했었어요, 썼었어요, 있었으면,

고치기 영어 교육의 영향이다. 이중으로 과거형을 쓴 것이므로 빼면 된다. 다녔거든요(‘다닌다’의 과거형), 했어요(‘한다’의 과거형), 썼어요(‘쓴다’의 과거형)

⑤____에 있어서/내 기준에 있어서...

고치기 일본 말법의 영향이다. ‘있어’를 빼면 된다. ____에서

⑥ “____”라고/남의 말을 인용할 때는 거의 ‘라고’를 붙이는 게 버릇처럼 돼 있다. 출판사에서 글을 고치는 사람도 말버릇으로 돼 있어서 고치지 못한다.

고치기/일본 말법의 영향이다. 빼도 될 경우도 있고, “____”고, “____”란, “_____”를...

⑦외국어/이슈, 비전, 글렘핑, 랜드마크...

고치기 쟁점, 전망, 대형천막, 대표건축물... 영어 단어를 안 쓰면 말을 못 할 정도이다. 특히 기술 쪽은 말할 것도 없다. 전문용어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일반으로 많이 쓰는 말은 제발 우리말로 고치고 다듬고 하는 정부부처가 있어야 하겠다.

정부도 국민도 모두,

늘 쓰는 우리 말과 글에 관심을 갖고,

늘 살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