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에서 또다시 바뀌는 소위 핵심역량중심 교육과정, '2015개정 교육과정' 도입에 즈음해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라는 시대의 요구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자.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은 사회를 이대로 재생산할 수 없다는 자각아래 '교육의 생태적 전환(생태적으로 살면서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으로 전환)”의 가능성을 최대한 찾아보자는 것이다.

누구나 불안하고 어두운 미래를 예측하는 마당에, 현재처럼 학생이 공교육을 받으면서 미래 사회에서 생존할 능력을 갖추기를 기대할 수조차 없는 것은 난감한 일이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미래사회 생존능력을 여섯 가지 핵심역량 – 자기관리능력, 공동체의식, 의사소통능력, 창의융합사고능력, 정보처리능력, 심미적 감성능력으로 정리하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미래사회를 기업이 주도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새로운 상품 개발과 판매에 적절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기업의 요구를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제 경쟁에서 앞서야 한다는 주장을 거두지 않고 있고,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존재하는 학교의 서열구조를 바꿀 어떤 전망도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위의 여섯 가지 핵심역량을 모두 포괄해 갖추게 하는 소위 융복합형 교육과정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학교는 자사고, 특목고뿐임을 주목해야 한다. 이 학교의 졸업생이 이제까지와 같이 서울의 유명 대학입학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대기업 정규직으로 진출할 것이다. 그런데도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을 내세우면서 진로교육 강화와 중학교 자유학기제 정책을 도입하는 의도는 중산층 이하의 자녀를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적응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닐까? 교육부가 발간한 자유학기제 운영 매뉴얼을 보면 직업을 탐색하는 내용으로 채워진 진로교육을 가장 강조하기에 이런 의구심을 갖는 것이다.

또 '2015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교사에게 주입식 강의 위주 수업을 벗어나서 학생활동 중심 수업을 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교과서 단원별로 학생활동의 내용과 평가 방법까지 지정해 꼭 준수하도록 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기존의 지식전달 위주 수업방식과 객관식 시험을 통한 평가 때문에 무기력과 무관심에 빠져버린 대다수의 학생을 잠에서 깨우겠다는 것이다. 교육부장관까지도 일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다수의 학생이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7만 명의 학생이 학교를 그만 두고 있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활동에 필요한 시설과 인력 투자를 늘리겠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으니, 결국 교사가 재주껏 잠자는 학생을 깨워보라는 정책인 것이다. 북유럽 학교들에 흔하게 시행중인 연극 중심 융복합 수업을 하려면 연극활동용 소극장 또는 큰 교실이 있어야 하고, 연극 강사를 채용할 예산이 있어야 하며, 여러 과목의 교사가 협의할 시간여유를 주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다양한 강사를 학교교육에 투입해 다양한 교과목을 개설하고, 학생의 선택권을 늘려주겠다는 정책이나마 시도했는데, 이제는 '학생 참여형 수업'이라는 그럴듯한 모형을 제시하면서 교사가 자율적인 학습동아리를 만들어서 진행하라는 '안되면 말고 식'의 정책인 것이다. 변죽만 울리고 시늉만 할 뿐 특목고와 자사고를 위주로 영재교육만 제대로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다면 '2015개정 교육과정 전면거부'에 돌입해야 할까? 변용과 틈새 활용 전략을 관철할 여지는 없을까? 나는 후자를 선택하고 먼저 교사가 학습공동체를 구성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이 주도하는 미래사회에서 일할 창의융합인재를 육성하라는 총론에는 반대하지만 삶의 터전을 지킬 수 있게 생존방법을 익히게 하자는 것이다. 현재의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문화와 단절하고 뭇생명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는 일이 시급하다. 현재의 삶에서 배우는 기회를 많이 늘리기 위해 학교 담장 밖을 넘어서 지역사회를 배움터로 만들려는 시도가 절실하다. 미래를 대비하는 '인재'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으로 학생을 대해야 한다. 그래서 배려심, 감수성, 자신감, 호기심, 정의감을 가슴에 품고 비주류의 영역인 농사와 에너지 자립기술을 탐구할 시간을 부여해야 한다. 교사부터 이런 영역을 주도적으로 학습해야 한다.

오랫동안 소외된 자들의 전략이 되었던 ‘변용과 틈새 활용 전략’은 주체들의 자각과 협력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 '2015개정 교육과정'에서 강조하고 있는 '교사학습공동체'를 예로 들면, 이미 혁신학교에서 스스로 조직해 운영하고 있다. ‘융복합수업 방침’에 대해 말하자면, 10년 전부터 홍성군 홍동면에서 초등과 중등 교사가 합심해 범교과교육과정연구모임을 구성하고 홍동천 살리기 환경수업을 진행한 바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다. ‘자유학기제’ 정책도 전국의 혁신학교를 보면 꿈과 끼를 제대로 찾아가는 배움의 사례를 무수히 만날 수가 있다. 승진에 목을 매는 교사가 주도해 보고서 작성을 위한 행사에 집중하는 기존의 연구학교와 달리 혁신학교에서는 대화와 민주적 의사결정을 중시하는 교사가 스스로 나섰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교사의 자발성을 존중해주고 서로 협력할 기회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해주는 사례이다. 새로운 교육과정에서도 강조하는 '교사학습공동체'를 구성해 틈새활용 전략을 마음껏 구사해보면 좋겠다.

이제 충북 괴산군이라는 농촌지역의 상황에 ‘변용과 틈새 활용 전략’을 적용해보면 마을과 학교의 협력관계가 핵심이다. 학교 자체의 시설과 교사의 힘만으로 배려심, 감수성, 자신감, 정의감을 키우는 인성교육을 하기 어렵고, 농사와 에너지 자립기술이라는 주제를 교육과정에 도입하는 데 반발도 만만치 않다. 때문에 오래 전부터 주장해온 바와 같이 '학교와 지역사회의 협력'을 다시 내세울 수밖에 없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 '햇살배움터교육네트워크'처럼 마을 주민을 주민교사로 양성하고, 논배미와 목공실 등의 시설을 활용해 수업을 진행하면 어떨까? 특히 취약계층 학생 20명을 마을 어른과 1:1 멘토링 관계를 갖고 월1회 이상 목욕, 공부, 살림살이를 이끌어 주고 있다니 부러울 지경이다. 학생이 계획해 조직한 여행 동아리를 지원하는 프로그램까지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 발전 과정을 조사해보았더니, 비밀은 교육청과 군청에서 민간의 자발성을 존중해주고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민주적 소통을 통해 의사결정을 해온 데 있었다.

마을과 학교의 협력은 어느 일방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자발성을 존중하고 민주적으로 소통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성공의 열쇠가 있다. 당장 시군구 수준의 청소년 예술잔치를 계획하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한편으로 교육청에서 학교의 예술동아리 담당교사를 불러서 잔치를 계획해 단 한 번의 보여주기 행사로 마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교육청 담당 장학사, 각 학교 예술동아리 담당교사와 더불어 지역의 문화예술인이 함께 학년 초에 모여서 동아리 육성계획을 세우고 그 성과를 가지고 지역잔치를 진행할 수도 있다. 이 때 교육청과 독립된 지역의 문화예술인 협의체가 있는 상황이라야 한다. 그 때 비로소 그들의 자발성에 기초해 서로 연계를 더 많이 확보하고 교육청과 대등한 위치에서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그래야 신명이 나서 창의적인 제안이 쏟아져 나오고 시간과 공력을 내놓게 된다.

군 단위 또는 면 단위 지역발전협의회에 교육문화분과를 설치하고 군청, 교육청, 학교, 학부모, 지역인사, 문화예술인 들이 참여해 일종의 민관 협력과 협치 체제를 갖추자는 제안이다. 이에 대해 위계질서와 그것에 따른 권한과 책임 한계를 중시하는 공무원들은 불편해할 수가 있다. 하지만 지방자치제 시행 20년이 넘어가면서 민관협치를 당연하게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농산촌 군 단위에서 주민자치위원회와 지역발전협의회를 내실 있게 운영하고 있는 곳도 많이 나타났다. 우리 괴산증평지역에서도 '2015개정 교육과정'의 학생활동 중심 방침을 실현하기 위해서 학교와 지역사회의 협력을 위한 민관협치 체제를 갖추어 나가야 하겠다.

이러한 취지에서 9월 4일(금) 오후3시 괴산증평교육지원청 대회의실 강연회에 교사학습동아리 '농촌과 생명을 살리는 교육연구회'가 초청한 전북 완주군 고산향교육공동체 이근석 집행위원장에게 귀를 기울여보기를 권한다. 고산면 지역발전협의회 교육문화분과에서 출발해 군청, 교육청, 학교장, 교사, 학부모, 지역인사 들과 함께 교육포럼(300명 참석)과 교육한마당(1500명)을 해마다 주최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9월12일(토)-13일(일)에는 청주지역과 괴산증평지역 교사들이 중심이 돼 충북교육발전소 주관으로 전북 완주군 고산면 고산향교육공동체를 직접 방문할 예정이기도 하다. 

많은 분들의 동참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