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온 지 17년. 그 동안 배운 게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크게 깨달은 한 가지를 꼽으라면 ‘흙’이 아닐까 한다. ‘흙 농사가 반 농사’라는 농부의 이야기가 있듯이, 또 그것과 비슷한 말로 ‘배운 놈보다, 책으로 농사짓는 놈보다, 무식하게 거름을 밭에 때려 넣는 놈이 농사는 잘 짓는겨.’란 말처럼 흙을 잘 만들면 작물이 잘 자라는 건 두 말하면 잔소리, 요새말로 ‘당근’이다.

흙에 거름을 넣으면서, 흙을 갈면서, 흙에서 풀을 뽑으면서, 농부는 흙과 하나가 돼 간다. 오죽하면 시골 분들이 농사꾼을 ‘흙 파먹고 사는 사람’으로 묘사할까. 나만해도 풀을 뽑으면서 풀을 관찰하고, 풀 이름을 익힌다. 아직도 잘 모르지만.

이런 배움 덕이리라. 작년 초 솔멩이골 작은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글쓰기모임에서 감옥에 있는 어느 분한테 편지를 쓰기로 했을 때 난 그야말로 오래간만에 이런 시를 쓸 수가 있었다.

봄

봄이 오고 있어요.

지난해보다 빨리 성큼 다가오고 있어요.

질퍽한 땅을 밟으면서 봄을 느껴요.

봄은 발밑에서 오고 있어요.

땅 밑에서 오고 있어요.

땅을 물끄러미 내려다봐요.

물컹한 흙을 손으로 만져 봐요.

이제 땅속에서

온갖 식물이

실뿌리를 뻗겠지요.

가느다랗고 희고 연약한

실뿌리를 뻗겠지요.

실뿌리가 얽히고설켜

튼실한 뿌리를 만들어 내겠지요.

그래요.

봄은 화려한 꽃으로 오는 게 아니에요.

연약한 실뿌리로 와요!

봄은 화려한 땅 위에서 오는 게 아니에요.

캄캄한 땅속에서 와요!

그러면 교육은 어떨까? 거름기가 없는 흙에서 작물이 잘 자랄 수 없듯이 아이가 이 사회가 필요한 지식을 배우고 익혀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려면 아이에게 먼저 거름을 듬뿍 줘야 하지 않을까?

아이에게 거름은 무엇일까?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 맘껏 뛰노는 것, 느끼는 것을 마음껏 글이나 그림이나 노래나 춤으로 표현하는 것 들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 교육은 오랫동안 마치 '맨 땅에 씨를 넣는 것'처럼 아이들 머릿속에 지식을 때려 넣기 위해 발버둥을 쳐 왔다. 결국 초등학교 6년을 지나면서 아이들은 어릴 때의 엄청난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자율성은 바닥을 친다. 이렇게 커서 대학에 가고 직장에 간들 행복할 수 있을까?

40이 넘고 50이 넘어 그때서야 ‘나’를 찾아 헤매는 '나' 같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하루라도 빨리 이 입시지옥과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자고 외치고 싶다.

“맨 땅에 씨를 넣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