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가물다. 80년만의 가뭄이라고 한다. 이렇게 가물 때면 생각나는 기억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

내가 귀농해서 집을 짓던 때도 몹시 가물었다. 귀농한 지 2년 만에 마음에 드는 땅을 마련해 집을 직접 짓기로 했다. 집 지을 땅으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좁아 아예 흙벽돌 기계를 사서 찍기로 하고, 소개를 받아 영등포에 기계를 주문해서, 기계를 갖다가 찍기 시작한 날이 2001년 3월 26일, 그 해 100년만의 가뭄이 들어 우리 동네 사람들이 모를 못 심어 난리가 났고, 결국 군대에서 나와서 관정을 파줘서 모를 심었다.

내가 벽돌을 찍고 말려서 벽을 쌓는 동안 비가 거의 한 방울도 안 왔는데, 동네 사람들이 집 짓는 구경을 와서 툭 하면 “동네에 집 짓는 사람이 있으면 비가 안 와.” 하고 이야기하는 바람에 몸 둘 바를 몰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할아버지 가운데 한 분은  몇 년 전 경운기 사고로 돌아가시고, 세 분은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둘.

2006년 가을로 기억한다. 가을 가뭄이 몹시 심했다. 밭에 무를 심었는데 무가 잘 자라질 못했다. 특히 내 밭은 비닐을 안 써서 더 심했다. 하지만 나중에 무를 뽑아보니 무 뿌리가 거짓말 조금 보태 한 자 정도 됐다. 날이 가무니 무가 살려고 뿌리를 더 깊이 내린 것이다. 그 때 함께 농사짓던 친구들과 함께 서울 길거리로 무를 팔러 다닐 때 우리는 무를 높이 쳐들고 외쳤다.

“뿌리를 보셔유! 가물어서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려 흙속의 영양을 골고루 흡수한, 몸에 좋은, 맛 좋은 무여유!”

우리는 무를 잘라 지나가는 사람들이 직접 먹어보도록 했다.

“무에는 아밀라아제 같은 소화효소가 잔뜩 들어 있어유! 이 무는 그냥 무가 아녀유! ‘약’무여유, ‘약’무!” ㅎㅎㅎ 약장사가 따로 없었다.

자연은 냉정하다. 사람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사람은 냉정한 자연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힘은 들지만 가물 때도 농부는 농사를 포기할 수 없다. 비록 수확량은 줄더라도 혹독한 가뭄에 살아남기 위해 뿌리를 깊게 내린 ‘약’작물을, 먹거나 팔아서 버텨야 한다. 또 농부는 거친 땅에서 자란 ‘씨’를 다음해 농사를 위해 보존해야 한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 이상기후 속에서, 가뭄과 홍수 속에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농부는 ‘씨’를 어떻게 보전해야 할지 더욱 더 고민해야 한다.

교육도 마찬가지겠지. 물고기를 어장에서 관리하듯 아이들을 10년 20년 교실에 가두어놓고 죽은 지식을 머릿속에 때려 넣어 관리하는 방식의 교육으로는, 인류는 온전히 ‘씨’를 보전할 수도 살아남을 수도 없으리라.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자연과 사회에 풀어서 마음껏 뛰놀고, 겪고, 느끼고, 표현하도록 해야, 자율성을 가진 건강한 ‘씨’로 자랄 수가 있다. 지식교육은 그 다음이다. 마음만 먹으면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