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참여하고 있는 충북교육발전소 정책위원회에서는 2015년 1학기 동안 주요 연구과제로 ‘자유학기제 운영 개선방안’을 정하고 학교와 지역사회의 협력관계를 중요한 하나의 주제로 채택했다. 이 주제에서 경기도 마을교육공동체 정책이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판단됐다. 나는 2014년 9월에 경기도새로운학교네트워크 주최로 열렸던 ‘마을교육공동체 토론회’ 자료로 정책위원회 1차 토론회를 열었다. 충북교육발전소 간사 2명, 회원 교사 8명, 학부모 1명이 참석해 이재정교육감 인수위원회 백서에 포함되었던 간단한 문건과 ppt 일부를 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 마을교육공동체 정책 전체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진행한 토론이었지만 앞으로 논의할 방향을 정할 수 있게 한 성과가 있었다.

먼저 마을교육공동체 정책의 등장 배경을 간단히 살펴보자. 경기도교육청은 김상곤 교육감 시절 혁신교육지구를 지정해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 간 협력으로 공교육 내실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다. 이 경험과 성과를 이어가려고 이재정 교육감이 내세운 정책이 ‘마을교육공동체’이다.

이전의 혁신교육지구 정책과 다른 점은 지방자치단체의 협력을 받는데서 벗어나 교육협동조합, 교육자원봉사센터, 학부모지원센터 같은 지역사회 시민사회 영역과 협력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혁신교육지구 정책에서도 지방자치단체의 자금을 바탕으로 지역사회 시민단체가 공교육에 도움을 주는 노릇은 많이 했지만 이 과정에서도 실제로는 학교와 교사가 주도했다. 서울시와 경기도에서 교사를 지방자치단체로 파견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렇게 하지 못할 때는 지역사회 시민단체 활동가를 영입했다. 이제는 지역사회 시민단체와 학부모 역량을 교육협동조합, 교육자원봉사센터, 학부모지원센터로 결집해 좀더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한다는 계획으로 보인다.

물론, 학교수준에서도 변화가 있는데, 이른바 ‘꿈의 학교’를 설립해 방과후, 방학중, 또는 위탁형으로 운영한다는 구상이다. 위탁형 꿈의 학교는 서울시교육청에서 발표한 ‘고교 1년 과정 전환학교’와 비슷한 정책으로 아직도 정책입안 단계에 있다고 한다.

이 꿈의 학교에 대한 충북교육발전소 정책위원의 의견은 ‘학생주도 교과과정 구성’에 대한 의구심에 모아졌다. 예를 들어서, 꿈의 학교 학생이 마을식당에서 일하면서 식재료 구입, 전처리, 요리, 서빙, 경영 등 전반에 대해 관찰하고 경험하게 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한다고 하면 교사의 면밀한 지도와 보살핌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이런 준비를 갖출 수 있느냐의 문제와 국가교육과정과 충돌하는 점은 어떻게 극복하며 과연 학력인정을 어떤 식으로 해줄 것인가의 문제도 제기했다. 학력인정을 받지 않는 위탁교육 형태라면 사교육(요리학원)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문제도 제기했다. 학교의 학력인정 독점을 깨자는 것인가라는 문제제기이다.

다음으로 마을교육과정을 정규수업에 도입하려는 시도가 가져오는 문제점을 논의해보았다. 이 시도는 자유학기제에도 적용할 수 있는 정책이므로 깊이 논의할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이미 경기도의 많은 혁신학교의 사례에서 알고 있듯이, 지역인사를 정규수업의 (보조)강사로 초빙하거나 시장에 나가 가격을 조사하고 상인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수업개선을 시도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방과후를 탁구장, 미술학원, 국악박물관 등에서 수업한 경우도 있었다. 어느 미술학원에서는 학교 방과후 과정을 싼 값에 개설해주면서 그 반대급부로 학원에 대한 홍보와 수강생 유인효과를 얻었다고 한다. 이런 시도는 혁신학교나 자유학기제 정책을 시행하는 데 필요한 시설과 인력이 공교육에는 부족한 한계점을 극복하려는 것이지만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자격증을 가진 교사가 국가수준교육과정에 따라서 수업을 교실에서 진행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인사를 초청하거나 삶의 현장에서 수업을 진행한다는 구상은 파격이다. 이런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려면 교사는 새로운 전문성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교사들의 반발이 있을 것이다. 또 교과서와 대학입시 준비가 중심이 되는 교육을 벗어난다는 점 때문에 학부모의 반발 또한 클 것이다. 전교조에서 입시위주 교육과정을 반대해 생활중심 교육과정을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현재의 국가수준교육과정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유도리교육과정을 모방한 우리의 7차교육과정에서 창의적체험활동 시간도입을 통해 시도했던 진보적 교육과정을 마을교육과정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창의적체험활동 교육과정이 실패한 원인인 교육인력과 시설 부족을 극복하는 점 뿐 아니라 여러 세력의 저항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이다.

충북교육발전소 정책위원 대부분이 교사여서인지 모르지만, 학교의 수업과 학력인정에 대한 독점이 해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이 제기되었다. 이미 사교육 시장에 빼앗긴 공교육의 기능을 이제는 시민사회에 내주어야 한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고, 교사의 역할과 전문성의 내용에 대한 큰 변화가 예상된다는 우려인 것으로 보인다. 입시 위주로 교육하고 신분상승과 학력취득에 대한 기회균등을 가장 중요한 정책의제로 생각해오던 관행을 고수하는 집단은 교사만이 아닐 것이기에 마을교육공동체와 같은 새로운 시도 또한 왜곡될 가능성도 크다.

나는 수업에 생활중심 교육과정을 도입하고 지역사회 교육역량을 키워서 민관협치 방식으로 공교육을 혁신하는 것에 찬성한다. 하지만 마을교육공동체라는 정책으로 이런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개념과 원칙에 대한 사전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즉, ‘마을이란 어떤 곳을 말하는가?’에 대해 합의하고 구성원 전체의 힘을 모아 추진해야 한다. 풀무학교가 있는 홍성군 홍동면이나 공동육아에서 출발하여 대안학교까지 세운 서울의 성미산 마을을 모델로 한다는데 이런 마을이 세워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에 대한 불신 때문인지 마을이란 개념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늘고 있지만 대량소비사회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이런 마을을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또 ‘마을교육과정을 통해 어떤 인간형을 길러 내려고 하는가?’라는 교육철학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인재를 키워내야 하는가? 아니면 자립, 배려, 협력을 할 줄 아는 생활인을 키워야 하는가? 홍성군의 풀무학교를 보면 후자인 것이 분명한데, 오늘날 학부모와 교사 중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모아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도 해야 한다.

열 사람의 의인이 있으면 세상은 망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세웠던 대안학교를 공교육에 도입한다는 시도는 아닐 것이다. 그것보다는 평범한 생활인을 키워서 서로 배려하고 협동하면서 지역사회(특히, 농촌)에 정착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하자는 소박한 의도일 것이다.

앞으로 ‘마을이란 어떤 곳을 말하는가?’ ‘마을교육과정을 통해 어떤 인간형을 길러 내려고 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중심으로 토론을 더 깊이 진행해야 한다. 또 ‘어떻게 학교와 교사의 독점을 벗어나서 지역사회(마을)에 수업과 학력인정 권한과 책임을 공유할 것인가?’ ‘이런 시도로 과연 자유학기제의 의도인, 학생들에게 꿈과 끼를 찾을 기회를 줄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많은 의견을 나누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