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자유학기제'를 시행하는 학교가 한층 많아졌는데, 2016년부터는 전국의 모든 중학교에서 시행한다고 한다. 괴산증평지역의 우리 학교를 비롯한 대다수 중학교에서 2014년도에 시행한 경험이 있고, 올해부터는 괴산증평지역 모든 중학교에서 시범으로 시행하려 하고 있다. 연구시범지역으로 선정된 것이기에 괴산증평교육지원청도 700만 원 정도의 예산을 지원해, 각 학교마다 500만 원에서 1000만 원까지 지원금을 받으니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행할 수 있다.

하지만 학생이 자유롭게 학습할 모든 주제를 프로그램으로 개설할 정도로 지원금이 충분하지는 못했고, 교사들끼리의 협력이 잘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교사의 이해정도가 낮고, 프로그램 기획과 수행을 위한 연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일방으로 주도하는 상황이라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겠다.

'자유학기제'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한 학기 동안 시험의 부담에서 벗어나 학생이 배우고 싶은 주제를 마음껏 학습할 수 있도록 자유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오전에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같은 주요과목 수업을 진행하고 오후에는 동아리활동, 예술체육활동, 진로체험활동을 주로 진행한다는 구상이다. 오후 활동의 세 가지 종류 중 어디에 중점을 두는지는 학교가 결정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마다 양상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아일랜드에서 '전환학기'라는 이름으로 1년 동안 운영하고 있는 제도인데, 희망하는 학생은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진학 전까지 전환학기제를 운영하는 학교에서 공부한다. 1970년대에 몇몇 학교에서 시작했다가 이제는 70퍼센트의 학생이 참가하고 있어서, 2013년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중2학년에 1년 동안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중1,2학년 중 한 학기에 시행하겠다고 공약했기에, 2013년부터 전국에 연구시범학교를 지정해, 보고서를 발표하고 이후 지속해서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부 방침에 따르면, 중학교 전체 학년에 프로젝트 수업모형을 도입하는 등의 변화를 가져오겠다는 목표를 밝히고 있다. 아마도 진보교육감들이 도입하고 있는 혁신학교정책에 맞불을 놓겠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가 발간한 자유학기 운영 지침서에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주요과목에서 프로젝트수업을 시도해 이것을 동아리활동이나 진로체험활동에 연결시키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충북도교육청에서 발간한 사례집을 살펴봐도 혁신학교에서 자유학기제를 도입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운영한 경우가 드물다. 교사들이 협력해 프로젝트 과제를 수행할 시간과 열의, 그리고 경험이 부족한 데 원인이 있다고 보인다.

이렇게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중앙정부가 자유학기제 정책을 일방으로 밀어붙이니 학부모가 보이는 반응은 “왜 공부를 시키지 않고 놀게 하느냐?”는 것이다. 학생은 체험이나 동아리활동이 재미있다는 반응이지만 더 재미있게 더 많은 프로그램을 개설해달라고 하거나 오후에는 그냥 알아서 놀고 쉴 수 있게 하교시켜 달라는 말을 한다. 교육부 담당자들도 이런 반응을 예상 못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인지 학교가 지역사회와 학부모의 도움을 받아서 체험활동과 동아리활동을 좀더 내실 있게 운영해달라는 주문을 계속 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사회에는 아이들의 문화예술활동과 체험활동을 위한 시설과 인력이 거의 갖추어져 있지 않다.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어느 쪽도 이런 투자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도 읍면동 단위로 도서관을 갖추는 정책을 시행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사실 도서관과 청소년문화센터만 잘 갖추어져 있어도 학교에 아이들을 방과후 수업이라는 이름으로 오후 늦게까지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에 학교와 기업 사이에 업무협약을 맺어서 해결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어느 정도 성공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업무협약 건수만 올리려고 형식으로 업무협약서를 교환한 데 그치는 경우가 많고, 당장 해당 기업이나 기관에 학생이 방문했을 때 안내하고 체험을 진행할 담당자를 정해놓지 않고 있다. 이런 기업이나 기관에 학생을 인솔하고 가보면 견학이나 관광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려워서 시간과 교통비가 아까울 때가 많다.

한편 자유학기제 정책은 진로체험과 진로교육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중학생 때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정하고, 그 직업에 맞는 진학(인문계, 전문계 또는 대학 전공학과) 경로를 설계하라는 주문이다. 하지만 중학생이 그런 질문에 답할 단계인지 의문이 간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자존감마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부에 대한 부담감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전전긍긍하는 현실을 먼저 타개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소질과 적성이 무엇인지 느껴보지 못한 상태에서 전공학과와 직업을 정하는 것이 가능할까?

중학교 단계에서는 진로교육 뿐만 아니라 다른 주요교과 수업에서도 자존감을 갖게 하고 소질과 적성이 무엇인지 알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교실 속 자존감>의 저자인 하버드 대학교 조세핀 김 교수는 “너는 커서 무엇이 될래?”가 아니라 “너는 어떤 사람이니(who are you)?”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즉, “너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하니?” “너는 무엇을 잘하니?” 하고 물어야 한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체험과 활동으로 자유학기의 프로그램이 채워지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결론을 맺기 위해 “자유학기는 공교육의 희망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해보자. 일선 중학교에서 자유학기제 실무를 담당한 교사의 얘기를 들어보면 개선해야 할 문제가 현재의 학교제도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한다. 비관적인 진단을 하자면, 입시준비에 대한 불안감이 학생과 학부모를 지배하고 있고, 자유학기제를 내실 있게 운영할 예산 지원이 충분하지 않으며, 학교와 지역사회의 협력관계는 아직 낮은 수준이고, 교사는 개별화되어 공문서 처리와 자기 교과 이기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런 비관적인 상황을 방치하는 경우 열린교실 정책처럼 잠시 시행하다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여기서 하나의 대안으로 덴마크의 ‘애프터 스콜레’를 참고해볼 수 있다. 애프터 스콜레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방과후 학교이지만 덴마크에서는 중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1년간 운영하는 일종의 예비고등학교 과정이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쓰기 위해 덴마크를 수차례 방문한 오연호 기자는 ‘인생설계학교’라는 이름으로 소개하고 있다. ‘주관이 뚜렷한 아이’를 키워내는 곳이라고 말한다. 정부가 학교 운영비의 50%만 지원하지만 종합학습을 하거나 음악, 체육, 건축 같은 특별 주제를 선택해 몰입교육을 하는 것이다. 또 거의 모든 학생이 기숙사에 살면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과 상대를 배려하는 인간관계 기술을 배우기 때문에 이후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두각을 나타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시교육청에서 <전환학교>라는 이름으로 고등학교 1학년 과정에 덴마크 애프터 스콜레를 적용해보려고 검토 중이라고 한다. 대학을 1년 늦게 간다고 생각하든지 확실히 정해서 간다면 더욱 경제적이라는 판단을 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지원할 것이다. 우리 충북지역에서라면 폐교 위기에 있는 소규모 고등학교나 중학교 시설을 이용해 실천해볼 여지가 더 많다고 본다. 1년 과정만 운영할 것이 아니라 희망자에 한해서 2-3년 과정의 임시직업제(인턴쉽)까지 운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현장을 충분히 경험해 자신이 할 일을 찾고, 나중에 대학에 가서 배우고 싶을 때 관련 분야의 학과를 찾아갈 수 있다. 이것이 선진국형 진로교육임은 말할 나위도 없고, 학력 차별문제에 대한 대응일 수 있기에 시도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래서 나의 결론은 ‘자유학기’를 일방으로 시행하기보다 ‘자유학교’ 또는 ‘전환학교’를 병행해 시행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