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 더운 여름을 지내냐고, 마스크 없인 현관문을 나설 수 없는 날들을 어떻게 살아내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을 할까? 그런데 힘든 일이 ‘무더위’나 ‘코로나19’처럼 시간이 가기를 그저 견디면 되는 일이라면 괜찮다. 중요한건 ‘생존’이다. 줄줄이 문을 닫는 상가들, ‘임대’라는 글자를 붙인 커피집과 식당들, 수많은 가게들......,도시 전체가 나날이 비어가는 것 같은 거리를 걸으며 문 닫는 공간을 매개로 살았던 사람들을, 그리고 아들을 걱정한다.

2019년 스물 둘 아들은 작은 스시집을 창업했었고 ‘젊은 사장’이란 말을 들으며 잠시 설렌 날들을 보내기도 했다. 그때 아들은 나이대별로 자신의 성장모습을 그려냈고 친구들보다 앞서 어느 지점에 다다라 있을 그날들을 얘기했었다. 아들이 신나있으면 나도 따라 기운이 났다. 그러나 창업 몇 개월 후 코로나가 시작됐고 잠을 줄이며 새벽까지 일을 해도 처음 문을 열 때의 아들의 꿈은 이미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월세도 내기 힘들게 되며 아들은 종일 매출걱정을 했고 아들도 나도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순진했던 시간들은 냉혹한 현실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누구도 청년들에게 너희들이 만나게 될 세상이 전 지구적 기후위기와 인류가 휘청거릴 만큼의 고난의 시간이 도래할 거라 말해줄 수 없었다. ‘체력의 한계를 넘는 노력’은 빠른 속도로 ‘몸’을 그리고 ‘마음’을 망가뜨렸다. 꿈이 접히고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과정도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걸 지켜보는 시간들은 더디게 갔다. 전철을 타면 멋지게 양복을 입고 나름 근사한 직장에 다니는 아들 또래의 사람들을 보면 ‘나의 어느 시간이 문제였을까?’ 하는 자책도 들었다.

가게를 접은 아들은 한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밥도 먹지 않았고 잠도 자지 않은 듯 보였다. 아들의 시간은 앙상해졌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지 않고 살고 싶은 게 꿈이라던, 가격표를 보지 않고 물건 한 번 사 보고 싶다던 아들은 자신을 다시 일으키는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엄마라는 존재는 늘 자식의 깊은 절망과 연결되어 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현관에 벗어놓은 아들 신발만 바라보던 어느 날 아들은 드디어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자신의 진로에 대해 다시 정리해 말해주었다. 돈을 벌어 제과제빵을 배우러 일본을 가겠다고, 아들은 다른 스시집 직원이 되었고 이젠 머리 아프지 않고 일만 해도 좋다고 했다. 손님 걱정, 재료비 걱정은 사장 몫이니 참 좋다고, 그리고 일본어 학원을 다녔다. 그러기를 몇 개월, 아들은 다시 학원을 나가지 않더니 다시 방문이 열리지 않았다. 아들은 고민과정에는 모든 문을 걸어 잠근다. 엄마인 나는 늘 아들이 스스로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이번에는 얼마나 걸릴까?’

그러다 아들은 전혀 새로운 얼굴로 방문을 나왔다.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자신의 체력으로 오래 버티기엔 제과 쪽은 아닌 것 같다고, 그리고 일본어 배우고 유학 갔다오고 창업하려면 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고.

아들이 찾은 미래는 ‘초콜릿’이다. 아들은 초콜릿 명인을 찾아냈고 사사를 받았다. 스시를 준비할 때 활어를 죽이며 피비린내를 맡는 것을 힘들어했던 아들은 지금까지 생선을 먹지 않는다. 그런데 초콜릿은 달달하다. 만드는 사람도, 만드는 공간도, 먹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진다. 게다가 유통기간도 스시에 비하면 길고 관리도 편하다. 아들은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찰리와 초콜릿공장’ 영화를 내내 기억하고 있었다고 했다. 자신이 그때 꾸었던 꿈을 잠시 잊었었는데 드디어 그 생각이 났다고 했다. 아들친구는 아들에게 ‘넌 도대체 꿈이 몇 개냐?’고 물었다고 한다.

강남까지 초콜릿을 배우러 가며 아들은 무척 재미있어 했다. 선생님이 주신 레시피를 참고하며 스스로 다양한 재료와 비율로 연구하는 것이 자신한테 맞는 일인 것 같다고 즐거워한다. 그리고 이제 자신만의 초콜릿을 만들기 시작했다. 요즘 아들 머릿속엔 초콜릿만 들어있다. ‘스스로 만족하는 초콜릿을 만들고 그걸 먹는 사람이 행복해지는 그러면서도 비싸지 않으려면?’

아들은 고민에 고민을 더한다. 지금 우리 집엔 달달한 고민이 흐르고 있다. 그걸 지켜보는 나도 참 좋다.

아들의 첫 작품을 주문한 지인들에게 아들은 초콜릿을 전달할 방법을 고민했다. 날이 너무 더워 조금이라도 녹을까 봐, 아니면 배달원들이 물건을 던져서 모양이 안 예뻐질까 봐 이러저런 방법을 연구하며 의견을 물어왔다.

그러더니 세상에! 자신이 직접 배달을 가기로 했다고 했다. 초콜릿 가방엔 초콜릿이 녹을까 봐 ‘설레임’이란 아이스크림까지 얼려서 넣고 광명시, 남양주시, 충북 괴산까지 차를 운전해 갔다. 지인들이 시킨 초콜릿은 기껏 한 개나 두 개였다. 그분들은 그저 맛이나 보려고 주문한 건데 아들은 중고소나타를 끌고 35도가 넘는 날 몇 개의 도시를 누볐다. 광명시와 남양주시에는 주문한 사람이 집에 없었고 충북 괴산은 산동네까지 올라가야 했다. 아들은 자신의 첫 작품은 온전히 그 마음을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더위보다 뜨겁게 하루를 보냈다.

“제 맘이 짠합니다. 초콜릿 만드는 거 배워서 배달까지 했으니 대견해요. 의지가 멋있어요”

“초콜릿 잘 받았어요. 직접 배달 올 줄 알았으면 좀 더 주문할 걸 그랬어요. 모양도 깔끔하고 맛도 좋아요. 아들이 너무 맛있다고 하네요. 저도 먹어봤는데 둘 다 맛있어요. 시중에서 산 허쉬초콜릿이랑 비교 차 먹어봤는데 비교가 안 되네요.”

아들은 배달을 하고 나서도 내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남양주까지 갔는데 내가 주고 온 집이 그 집이 아니면 어쩌죠? 주문하신 분은 없고 아들은 모르는 눈치던데......,”

“엄마 후배 분은 봉투를 따로 주셨어요. 받아도 되나요?”

아들의 흥분이 그대로 전해진다. 오늘 이런 마음을 아들이 잊지 않고 간직하면 좋겠다고 생각도 한다. 덩달아 가슴이 콩닥거리는 여름날의 흥분이 좋다. 그리고 아들을 응원해준 지인들에게 마음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또 그들로부터 배운다. 다른 이들의 아들, 딸의 삶도 다 이리 절절할 테니 서로 손잡아주며 살아야겠다고.

바람처럼 자꾸만 흔들리는 생이지만 자신이 만든 초콜릿을 대하는 아들의 자세를 보며 드디어 나도 미소가 지어졌다. ‘이번엔 정말 뭐라도 할 것 같아! 애뜻한 것들은 다 통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