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해! 내 미래를 봐 버렸어. 어떻게 해도 행복해질 수 없는 내 미래. 80살이 돼도 일만 하는 가난한 부모들을 봐. 저렇게 살기 싫은데. 근데 나도 답이 없을 것 같아.”

스물넷 아들이 친구들이랑 주고받은 이야기를 전한다. 가난한 부모를 둔, 그 부모가 나이 들어서까지 힘들게 일하는,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 부모의 삶을 두 눈으로 본 친구들은 미리 절망하고 체념을 내면화하고 있었다. 빈곤층의 노력은 현재 가난의 정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뿐 더 나아지는 내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는 모두 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할 뿐 누구도 현재의 삶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걸진 않는다.

고령사회로의 진입은 축복이 아니라 온갖 불행의 총합이 되어 버렸다. 인구대비 많아진 노인 인구는 일자리 등 출구 없는 사회에서 혐오대상이 되었다. 대한민국 통계에서 가장 슬픈 1위가 바로 노인자살률이다. 수명은 길어졌지만 길어진 노년기는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길이고 불안한 길이다. 게다가 젊은 날 쉬지 않고 일해야 했던 그들은 대부분 자연스런 노화과정과 겹치며 몇 개의 깊은 질병을 지니고 있다. 종합병원 약국에 가면 수 개월분의 약을 한 꾸러미씩 타가는 장면이 즐비하다.

‘가난의 문법’은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에 대한 책이다. 나는 가끔 골목이나 거리에서 손수레에 종이상자를 주워가는 노인분들을 본 적이 있다. 힘에 부치는 노동, 사고의 위험을 감수하며 차도로 가는 장면을 보며 그분들이 저리 힘들게 일하면 생활에 도움이나 되는지 궁금했었다. 그리고 왜 가난은 저리도 오래 사람들 곁에서 딱 붙어있는지 안타까웠다.

‘가난의 문법’은 연구자료와 해석을 덧붙이며 재활용품을 줍는 여성 노인의 이야기를 소설형식으로 다뤘다. 가난해도 자식의 수입이 있으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고, 그들의 자식은 대체로 부모를 돌볼 형편이 못되고 오히려 종이상자를 주은 수입으로 자식을 도와야 하는 처지에 있는 경우도 많다. 빈곤과 질병은 어쩌면 한 몸이다. 쉬지 못하고 일하고 재 때 병원에 가지 못하며 치료받을 돈이 없으면 병은 깊어진다. 재활용품을 줍는 여성노인 중에 아프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소유한 집이 있다가도 자식을 위해 혹은 병든 가족을 위해 처분한 경우가 많고 재교육을 받을 기회나 돈이 없어 전문기술이 없는 경우가 많다. 또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거나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때 잠도 줄이며 거리로 나서는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아마 그녀들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거리로 나가게 될 것이다. 아주 갑작스럽게 특별한 제도와 복지, 기본소득 혹은 쓸만한 공동체 들이 나타나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그런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그들이 다양한 경로의 삶을 살아온 이야기를 소개한다. ‘젊은 날 열심히 살지 않아서 종이상자를 줍는 게 아니다. 한국의 노인은 일을 많이 하는데도 빈곤하다. 현재 노인들에겐 노후 생활의 경제적 기반이 없다. 오래 살게 되었는데 연금이 없거나 적고 일자리도 없다. 게다가 노인의 노동은 대부분 질 낮은 것밖에 없다. 노인 중에서도 여성 노인의 취업상황은 더 안 좋다. 그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정부의 기초노령연금과 노인일자리사업, 사회복지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노인의 빈곤율은 낮아지지 않고 있다’고 밝힌다.

인천 해인교회 ‘실버자원협동조합’, 서울대학교의 ‘리어카 광고 플랫폼’, 인천시 부평의 ‘러블리 페이퍼’, 서울환경연합 ‘플라스틱 방앗간’ 등은 노인들에게 안정적 일자리제공과 소득보장 등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빈곤 노인들에겐 접근 가능한 플렛폼은 없다. 노인은 국가와 사회에 속해 있지만 빈곤은 철저히 개인의 몫이다.

“인제 우리 못 써. 다 써버렸어.”

엄마 친구분이 통화하시면서 엄마한테 하셨다는 얘기다. 서로 안부를 묻다가 아픈 곳이 많다고, 밥도 겨우 먹는다고 말하는 엄마 얘기를 듣고 하신 얘기다. 그분들이 당신들의 몸을 다 써버린 대가로 자식들도 컸고 사회도 국가도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한국의 노인들은 패잔병 취급을 받는다. 그들 삶의 맥락은 사라지고 현재의 ‘쓸모없음’은 부각된다.

본문에 나오는 저자의 시선이다.

‘거리에서, 골목에서 만난 노인들은 말 못할 사연들을 숨기며 일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또 다른 이는 공적 연금을 받으면서, 또 누군가는 아무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그렇지만 급격한 변화에서 낙후된 존재가 되어버린 그녀들이 그대로 일을 접으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한국사회에서 낡고 오래된 산업과 그 종사자들에 대한 태도는 늘 냉혹하다. 노인들은 사회적 쓸모가 없는 존재이기만 한 걸까?’

가난의 문법은 도시 빈곤노인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농촌의 가난한 여성노인들도 새벽부터 일년 내내 봉고차를 탄다. 일당을 받고 차가 내려 주는 곳이 어디든 가서 일을 한다. 배추밭 무밭, 하우스, 마늘밭, 팔십이 넘고 90이 다 되어가도 고된 노동은 끝나지 않고 가난도 친구처럼 머문다.

신체조건에 맞는 즐거운 노동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좋아하는 책 한 권쯤 읽고, 영화와 음악을 들으며 친구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런 노년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할까? 가난하면 인간의 조건이 제거돼도 되는 사회는 너무나 삭막하다. 노인의 모습은 그 사회의 종착역 모습이다. 그 모습이 고개 돌리고픈 심정이어서 청년들은 서둘러 절망하고 대책 없이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