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름은 이제 문패가 아닌 양평수목장 소나무 아래에 있다.

‘죽음을 완성해 가는 과정’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자식들에게 보여준 모습이다. 아버지는 퇴직 후 위암수술을 받았고 그 후 몇십 년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담배를 끊었다. 수영과 걷기를 날마다 했고 붓글씨를 배웠으며 조계사까지 다니시며 불경도 공부했다. 당신 스스로를 위해 시간을 보내고 건강을 챙기며 지내는 아버지의 노년은 걱정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의 몸은 신호를 보내왔고 큰 수술과 입원, 퇴원을 되풀이하게 되었다. 그러다 노환과 치매가 동시에 심해지며 더는 집에서 보낼 수 없게 된 아버지는 여든셋에 요양원에 가게 된다.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 영양제와 좋은 음식을 챙겨먹으며 병원을 가고 운동을 한다. 그러나 사람은 어느 순간이 오면 그 모든 노력이 소용없음을 나는 안다. 자꾸만 침대에 누워 지내는 아버지를 보며 운동 안 한다고 잔소리하던 엄마가 생각난다. 그러나 이미 그때는 그것도 쉽지 않게 된 아버지였던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낯설게 옮겨가는 경로를 알아채고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가족들 모두 처음 겪는 일이라 요양원으로 모시기로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엄마는 지금도 그 트라우마를 앓고 계신다. 요양원으로 가게 된 무렵 코로나가 심해졌고 우린 생이별의 시간을 길게 가졌다. 요양원에서도 아버지는 몇 번의 위독한 상황에 놓였고 그때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거치며 생명을 이어왔다. 아버지의 몸은 갈수록 말랐고 기력을 잃었으며 누워서만 지내며 말도 못하게 되었다. 처음 요양원에 가셨을 땐 매일 거실을 거닐며 가족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삶의 끝에서는 통증을 호소할 목소리도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일 년 가까이 입으로 음식을 드실 수 없었으며 콧줄을 통해 넣어주는 미음을 고통스럽게 넘겨야 했다. 아버지는 치료가 아닌 생명연장의 과정에 들어서며 인간으로서 당신의 존엄을 모두 내려놓아야 했다. 그 시간을 견디는 건 가족 모두에게 고통이었다.

사람들은 물었다.

‘돌아가실 때 옆에 있었냐고’

어떤 질문은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요양원과 코로나가 겹쳐있고 아버지는 밤12시 55분에 가셨으니 가족들이 함께 있을 순 없었다. 아버지가 임종 순간에 얼마나 쓸쓸하고 슬펐을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우린 숱하게 아버지가 ‘이젠 갈 때가 됐다’는 표정을 확인했다. 그때마다 손을 잡아드렸고 마지막 인사도 마음으로 했다. 어떤 인사는 눈빛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죽음을 맞이하고 계셨던 것이다.

난 아버지가 고통에서 벗어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온 날 골목에 매화꽃 몇 송이가 피었다. 어떤 생명이 끝나도 꽃은 피고 햇볕은 따스하다. 배도 고프고 핸드폰도 울린다. 한 사람의 흔적은 쉽게 묻히고 사라질 것이다. 시간은 강한 힘으로 우리를 앞으로 밀어낸다. 죽음을 꽁꽁 동여맨 아버지의 몸은 따뜻한 흰 가루가 되어 양평의 햇살 좋은 언덕에 묻혔다. 그곳에서는 종일 아버지가 좋아하는 불경소리가 울리고 있다.

아는 사람들에게 받기만 하던 부고를 상주가 되어 보내면서도 자식들은 거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고생하신 아버지가 편히 가신 것이 다행인 것도 있지만 당신과 자식들의 관계가 다정하지 못했던 시간들 탓이기도 하다. 누구도 좋은 기억을 꺼내지 못하는, 그래서 오히려 자식들이 할 말이 많은 게 아버지의 삶이었다. 아버지는 가셨어도 자식들은 ‘아버지의 시간들’을 오래 얘기할 것이다. 어떤 아픔들은 시간이 지나면 ‘옳고 그름의 잣대’가 사라지기도 한다.

나는 지금 조금은 낯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처음 겪는 이 상실감을 보내는 방법을 난 잘 모른다. 몇 년 전에 겪었던 혼자되는 상실감과는 다른 종류다. 힘들다고 느껴진 순간들은 낯선 것들이 나를 둘러쌀 때 내 위치를 제대로 잡지 못한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이젠 안다. 낯선 것들이 내게 올 때 겁내지 말고 천천히 친해지면 된다는 걸. 결국은 시간이 내 편이 되어 다 편안해질 것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이번에는 느껴지는 대로 그냥 지내려고 한다. ‘자꾸만 내게서 뭔가가 사라져가는 이 낯설음’도 곧 해마다 피는 매화꽃처럼 고운 향기 내며 익숙해질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