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을 두통에 시달렸다.

생애 한 번도 당해보지 못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그걸 감당해내는데 미처 몸이 따라오지 못하고 있음을 나중에 깨달았다. 그림을 배우느라 폰을 무음으로 해둔 채 그림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수업이 끝나고 폰을 열어보니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요란하게 와 있었다.

아버지가 위독하니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순간 머리가 하얘지며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런 순간이 드디어 나에게 오는구나 싶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집으로 와 운전을 해서 요양원으로 갔다.

아버지는 입에 거품이 나오고 있었다. 며칠을 식사를 못했고 숨을 쉬기 힘든 상황이라 했다. 위급한 상황과 달리 아버지 표정은 평안해 보였다. 당신 삶이 끝나가고 있음을 아는 표정이었다. 나는 말없이 손만 잡아드렸다. 그냥 그거면 될 것 같았다.

지난 2월부터 요양원에서 생활하게 된 아버지는 집을 떠나면서 함께 터진 코로나19 때문에 가족들 얼굴도 보기 힘든 감옥과 같은 생활을 몇 개월 지내셨다. 가끔 찾아뵙는 순간에도 유리문을 가운데 두고 들리지 않는 목소리 때문에 같은 말을 두세 번 반복하다 돌아서는 게 다였다. 멀리서 생각을 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고 직접 얼굴을 보고 와도 미래가 없는 시간들을 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사는 동안 한순간도 자식들에게 다정하지 못했고, 자식들은 아버지의 그림자만 봐도 숨을 곳을 찾으며 자랐다. 우리 사이에 정겨움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자식들은 아버지를 죽음의 문턱 앞에 모셔두고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평생 당신 삶에 자식이 필요 없을 것 같던 아버지는 매일 좁은 요양원 거실을 돌며 식구들을 기다리는 시간을 보냈다. 보고 싶은 명단을 줄줄이 외던 아버지 앞에서 ‘나는 거기서 빼달라’던 엄마의 인생도 내내 아버지 때문에 뭉그러졌다. 나와 동생들의 어린 시절은 ‘무시와 폭언, 폭행’이 어느 순간 터져 나올지 모르는 집안 공기 속에서 탄탄한 연대의 감정으로 하나가 되곤 했다. 당신 시간에 최선을 다했지만 조금은 못생긴 날들을 지녔고 그것이 후회로 오는 시간은 너무 늦어버린 아버지, 고만고만한 아버지들 속에서 당신 생각을 수정할 기회를 갖지 못한 그 시대의 아버지 중의 하나인 우리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순간이 우리 앞에 와 있다.

우리는 응급실 앞에서, 그리고 손이 묶인 채 중환자실에 계신 아버지를 두고 가족회의란 걸 했다. 결국은 아버지의 임종과정을 얼마나 더 오래 지속시켜야 하는지와 수목장 장소와 여러 비용문제 등등의 내용을 정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신의 마지막에 대한 입장을 스스로 밝혀놓지 않으니 자식들이 겪는 심적 고통이 참 컸다.

자식들이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날 침대에 누워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내 방문에 서 있는 듯하기도 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우리는 각자의 관점으로 해석할 뿐이다. 거기엔 여러 생각들이 기생할 가능성도 크다. 그래도 나라면, 손발이 묶이고 산소를 주입받으며 병원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연명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고통을 말할 수도 없으며 당신의 생명과 일체의 치료와 돌봄을 타인이 결정해야 하는 이 상황이 오래 가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내 두통의 근원은 어떤 인연이 끝나고 있음을,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이 오고 있음을 감지하는 까닭인지 모르겠다.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는 아버지여서, 내 손을 잡아 준적도 없고 숱한 폭언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만든 아버지여서, 그것이 내 삶 전반에 치명적 악영향으로 작용하게 한 아버지여서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오는지 모르겠다.(2020.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