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해선 집을 나서지 않을 날씨다.

천둥번개 요동치고 장대비가 쏟아지는 일요일 이른 아침,

1호선 인천행에 앉아 도시를 납작하게 만들 것 같은 장맛비를 본다.

비는 꼭 필요할 때 필요한 양만큼만 내려주질 않는다.

너무 많이 오거나, 애가 타고 땅이 갈라져도 내리지 않는 것이

다정했던 사람들이 멀어져갈 때 같다.

신도림역에서 문이 열리자,

승객들과 함께 번개도 따라 들어올 기세로 번쩍이며 서 있다.

그때 검은 옷에 검정 구두를 단정히 신은 청년 하나가

비틀거리며 걸어오더니 퍽하고 빈 의자위에 쓰러진다.

그 소리에 모두 놀라 청년을 바라보는데

청년은 전철에 오른 뒤 안간힘으로 버틴 자신을 놓아버린 듯하다.

청년의 발밑엔 핸드폰과 지갑이 떨어져있다.

난 그가 머리를 다쳤을까봐 걱정이 되어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는 깊은 잠에 빠진 듯 꼼짝도 하지 않고 구겨진 몸으로 정거장을 이동했다.

창밖에선 거친 비가 계속 내렸다.

쓰러져 있는 청년 얼굴엔 깊은 슬픔이 가득하다.

지난 밤, 그에게 어떤 일들이 다녀간 것일까?

어떤 비탄의 무게가 청년을 무너뜨렸을까?

그는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한 아저씨가 일어나

지갑과 폰을 주워 ‘젊은이, 이봐 젊은이!’ 흔들어보다 곁에 두고 간다.

청년에게 무릎베개라도 해주거나 작은 슬픔조각이라도 한 개

가지고 내리고 싶었다.

(2019.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