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뒤뚱거리며 떨어지는 벚꽃 잎을 잡으러 간다. 그 아이의 발끝에 온 마음으로 따라가는 부모의 눈길이 있다. 아이를 바라보며 지나가는 어른들의 입가에도 환한 웃음이 번진다. 봄이 주는 선물이다.

화랑유원지의 벚꽃잎들은 바람에 나풀거리다 바닥에 연분홍 몸들을 포근히 쌓아놓는다. 공원을 걷는 사람들은 다정하고 따뜻해 보인다. 연초록 잎들이 반짝이는 나무들에게 감탄사를 보내며 공원을 걷다 ‘단원고’로 향한다.

붉은 벽돌의 학교 건물이 멀리서도 보인다. 그때도 오늘처럼 온 산하에 생명이 한창이었을 것이다. 친구 이름을 부르거나 장난을 치며 오르내렸을 아이들 학교 가는 길을 걸어본다. 아이들은 이 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횡단보도를 건너고 오밀조밀 살갑게 붙어 있는 빌라를 지난다. 단원고 가는 길은 정겨운 풍경이다. 세월호 어느 아이가 살았을지도 모를 그 빌라에 ‘세월호 납골당 결사반대’라는 현수막이 길게 펼쳐져 있다. 말도 안 되는 참사 앞에서도 자본은 건장하게 덧셈을 하며 외친다. 우리는 언제 인간의 세상에서 살아볼 수 있을까 생각한다.

교문에서 본관까지 길은 약간 경사가 있다. 주말인데 다행히 잠그지 않은 교문 덕에 학교 안으로 들어가 본다. 아이들이 공부하던 교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쉬이 그날로 돌아가 버린다. 아이들 사물함은 현관입구에 나란하다. 사물함에 물건을 넣고 빼며 왁자했을 소음도 들리는 듯하다. 운동장을 바라보고, 작은 매점과 두 개의 정자에도 가보고, 그곳에서 마주보이는 작은 숲에 봄이 오는 풍경도 감상한다.

그리고 학교 앞 편의점에서 아이들처럼 음료수도 하나 사 먹는다. 함께 걸은 후배에게 “여기 편의점에 아이들이 참 많이 왔을 것 같아” 말해본다. ‘서로 뭘 사달라 하거나 적은 돈으로 나눠먹는 풍경’도 그려본다. ‘씨유 안산단원고 정문점’이라고 핸드폰에 카드 승인 문자가 뜬다. 그 말도 아프다. 부모님과 유가족분들 그리고 친구들은 또 이 길을 얼마나 비통한 심정으로 오르내렸을까?

어디 이 길 뿐인가? ‘팽목항, 화랑유원지, 청와대, 교육청, 광화문, 목포신항......’ 아이를 가슴에 묻은 채 이동하는 모든 곳이 고통이고 절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픔은 이미 우리들 가슴까지 다 차지해버렸다. ‘슬픔으로 돌덩이처럼 딱딱해진 가슴’이 터질 듯 갑갑해 오기도 한다. 애써 유가족분들 앞에서 눈물을 참으려 했던 지난 시절이 헛수고였음을 깨닫는다. 우리가 슬퍼하는 만큼, 같이 잠 못 들고 아파하는 마음만큼 유가족분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일’을 상영하는 극장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사람들의 고통이 모여 세월호의 어느 엄마가 단 하루라도 슬픔을 잊고 잠이 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의 웃음과 목소리가 넘실대던 교실이 ‘죽음의 사각형’처럼 희생된 아이들 이름과 사진이 즐비한 ‘기억교실’로 변해버렸다. 지구상 어디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참사가 있을 수 있을까?

영화 ‘생일’에 나온 비탄과 절규가 앞서 방문한 ‘기억교실’에 가득하다. ‘이렇게 독한 날들을 어떻게 견디고 계실까? 세월호 아이들과 동갑내기 아들을 볼 때마다 여러 생각이 겹으로 난다.

진실도 밝혀내지 못하고 책임자도 처벌받지 않은 상태로 5년이 흘렀다. 노란 리본을 다는 것 말고 우리가 더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아이들에게 잊지 말자고 말하는 것 말고 더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매년 4월이면 아이들은 물을 것이다.

“왜 그런 사고가 났어요? 왜 가만히 있으라 했어요? 왜 구하지 않았어요? 왜 처벌하지 않았어요?”

이런 질문에 당당하게 답할 말들을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이렇게 부끄럽고 참담한 얼굴로 아이들을 보지 않으려면 말이다. 그리고 세월호 이야기는 4월에만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날마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고, 날마다 돌아오지 않는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와 유가족과 그들을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시청에 가면 직업군처럼 태극기가 있고 그들의 정제되지 않은 악마 같은 저주들이 즐비하다. 어느 순간은 그들과 공존하는 일이 가능할까 싶은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도 한다. 입에 담을 수 없는 사악한 확성기소리를 들을 때면 서둘러 유가족들을 가슴으로 품어 그 소리를 막아주고 싶다.

얼마 전 학교에서 만난 10살짜리 아이가 말한다. ‘5살 때 엄마랑 촛불집회에 갔던 걸 기억하고 있다고, 그날 이후로 노란 팔찌를 하루도 뺀 적이 없다고, 그런데 팔찌가 너무 커서 발목에 차고 다닌다.’고. 난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2014, 4,16, 그날 이미 죽은 것’이라던 어느 유가족의 말이 내 몸에 와서 박혀 ‘통곡의 시간’을 따라가는 4월 어느 날, 바람이 된 아이들이 하늘하늘 고운 벚꽃을 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