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의 빈민가는 높은 상공에서 비춘 카메라에도 윤기 하나 없는 버려진 땅처럼 보인다. 그곳에 자신의 출생기록도 없고 부모도 아이의 정확한 나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인이 살고 있다. 자인은 여러 동생들과 함께 가족의 생계를 위해 종일 뛰어다닌다. 온갖 거짓말로 진통제를 모아오고 자인의 어머니는 그 약들을 가루로 만들고 물에 풀어 옷에 스며들게 한다. 어머니는 그걸 수감 중인 제소자들에게 판다. 자인은 다른 시간엔 거리에서 위생 상태를 믿을 수 없는 주스를 만들어 동생들과 함께 판다. 자인 부모에게 아이들은 돈벌이 수단이다. 또 나중에 여동생 사하르를 매매혼으로 데려가는 작은 가게의 나이든 남자 주인이 시키는 배달일도 한다.

학교에 가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자인은 자신의 처지를 똑바로 응시하는 힘이 있다. 12살(로 짐작한다는 법원 측의 의견) 자인이 사는 세상은 그렇다. 어린아이들도 마약, 담배를 하고 희망이 없는 내일은 기다리지 않는다. 자인은 11살밖에 되지 않은 여동생을 나이든 남자에게 팔아넘기려는 부모에게 대항하지만 동생을 지키지 못한다. 그 일로 집을 나가 공원에서 화장실 청소일을 하는 라힐을 만난다. 불법체류자인 라힐은 가짜 신분증으로 이민국의 눈을 피해 사는 아기 엄마다. 아들 요나스를 화장실 빈칸에 숨겨 두고 일하는 장면은 정말 가슴이 아팠다. 잠시 라힐과 자인, 그리고 요나스는 가족이 되기도 한다. 라힐이 손님이 버린 케이크를 숨겨와 촛불을 켰을 때, 그리고 요나스가 재롱을 필 때 자인은 웃었다. 그러다 가짜 신분들을 갱신하기 위해 나갔던 라힐이 이민국에 체포되고 자인은 요나스를 지키려 하지만 라힐이 살았던 판자집마저 빼앗기며 그마저도 포기하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자인은 동생 사하르가 죽은 걸 알고 동생의 남편이었던 남자를 찌른다.

자인은 법정에서 자신의 부모를 고소했다. ‘왜 부모를 고소했냐’는 질문에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으니까요”라고 답한다. “나처럼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우리가 어떤 고통을 갖고 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외치는 부모님 앞에서도 자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 자인이 부모를 고소한 이유는 놀랍고도 정당하다는 생각을 했다.

매 순간이 위기이고 삶은 절망과 위태로움으로 가득한 레바논 빈민가의 이야기, 영화를 보며 이건 그냥 실제상황이고 다큐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실제 빈민가에서 길거리 캐스팅을 한 배우들이 대부분인 것도 그렇게 보이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레바논의 빈민가는 완벽하게 가난이 속살까지 드러나는 곳이다. 빈민 대부분은 서류에도 오르지 못하고 살다가 사라진다. 실재하지만 유령 같은 존재들이 더 약자들을 삶의 수단으로 부리고 거래하는 일이 다반사다. 자인은 그런 삶과 관습을 거부하는 아이였다.

영화 가버나움은 많은 상을 타고 갈채도 받았다. 국내에서도 극찬을 하는 이 영화가 세상을 보는 눈을, 약자와 소수자와 가난한 이웃과 이민자를 대하는 눈을 바꾸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냉골에서 찬 겨울을 나거나 절망과 두려움으로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이라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이, 누릴 수 있는 일상이 몹시 미안하게 느껴지는 영화였다.

“자인을 보면서, 요나스를 보면서, 라힐을 보면서, 사하르를 보면서, <가버나움>에 등장하는 모든 컷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의 이름은 죄책감이었다. 가버나움을 촬영하면서 나는 인간으로서 큰 변화를 겪었다.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고 죄의식이 떠나질 않았다. 영화를 본 여러분들도 그럴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더 이상 평범한 삶을 살 자격이 없는 것 같아지고 행복한 삶을 누릴 권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마음이 변화를 만들어낸다”

-나딘 라바키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