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6일 오전 10시, 목도나루학교 다목적실에서는 충북 전역에서 온 고1 학생 24명이 하태복 교장을 비롯한 교사 11명과 함께 배움의 공동체를 시작했다.

3월 8일에는 제주도에서 8박 9일 동안 ‘시작을 위한 여행’을 하면서 결속을 다지고 배움계획서를 만들었다. 학교 건물이 공사 중이고 식당에서 급식할 수가 없어서 떠난 긴 여행이었지만 <삼달다방>이라는 농촌민박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하고 식사를 스스로 준비해 먹으면서 밤늦게까지 토론한 특별한 경험이었다.

보통의 수학여행과 다르게 숙소에 오래 머물며 토론을 길게 하고 때때로 4.3평화기행과 자유여행을 하면서 목도나루학교의 철학과 원칙을 이해하고 자신들의 언어로 정리할 수 있었다.

한라산 등반에서는 마침 쏟아진 폭설 때문에 진달래 대피소까지 등산이 허용되어 사라오름까지만 갈 수 있었지만 모두 보조를 맞추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긴 여행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와 각자의 배움계획서를 완성하고 3월 19일 금요일 부모님들을 모시고 발표를 했다. 발표회 자리에서는 부모님들이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쑤욱 자란 자녀들의 모습에 대견해하고 눈물을 보이는 감동스런 모습을 연출했다. 이런 성과는 누구의 목소리도 소외시키지 않고 끝까지 듣는 문화를 만들면서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3월 마지막 주부터 시간표대로 수업 일정을 시작했는데 교사들은 ‘배움을 위한 몸과 마음 만들기’라는 봄 학기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아침 산책, 하루 열기, 하루 닫기와 같은 반복되는 일과부터 월요일 오후 세 시간 ‘모두 모임’을 통한 학생참여 의사결정은 ‘시작을 위한 여행’을 잇는 학교문화이다. 프로젝트 수업과 동아리 활동은 자발성과 자기주도성을 가지고 배움을 이어가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모두모임에서 어떤 주제를 가지고 토론할지 학생들이 접수하고 진행하는 방식으로 학생 스스로 주인이 되었다. 학생회장 선거를 할 때는 회장, 부회장 후보 네 명이 교무실로 찾아와서 ‘임원 없는 학생회’를 해보자는 제안을 해줘서 반갑고 신선했다. 모두가 주인 되는 직접민주주의를 해보자고 결정했다.

자기주도성을 발휘하는 배움을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했지만 프로젝트 수업과 저녁 묵학 시간이 중요한 시도였다. 묵학은 조용히 스스로를 성찰하는 시간인데 아직 정착하지는 못한 것 같다. 배드민턴 같은 동아리 활동에 더 관심을 보이는 학생이 많아서 자유롭게 배우는 시간이 되고 있다.

프로젝트 수업은 주제를 ‘목도나루학교 주변 마을 알아보기’로 정했고 누구를 인터뷰할지 어떤 곳을 찾아갈지를 학생이 정하고 교사는 그림자처럼 따라갔다. 실수하더라도 내버려 두고 스스로 결과를 감당하면서 배우게 했는데 예를 들면, ‘맛집 찾기’라는 주제를 정한 모둠에서 식당 주인들을 찾아다니면서 인터뷰를 하는 실수를 하고 교사는 주인 어른에게 “그런 질문을 하다니 도대체 생각이 없다.”는 핀잔을 같이 들어야 했다.

4월에 들어서자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에서 재미를 찾기 시작한 것 같다. 밤 9시에 하루 닫기 시간이 끝나면 휴게실에 모여서 컵라면과 새우깡을 함께 먹고 게임을 하면서 시끌벅적하게 떠들다가 잠자기로 정한 시간인 11시를 넘기기 일쑤다. 등을 끄고 방에 들어가서도 침대에 누워서 옆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핸드폰 게임을 하느라 12시를 넘기는 학생이 많다. 사감 선생님이 일일이 찾아다니며 잠을 자게 해도 새벽 2시를 넘긴다. 그런 학생이 다음날 7시 20분 아침운동 시간에 나오지 못하거나 아침을 거른다. 동료 학생이 가사실에서 누룽지, 주먹밥, 샌드위치, 플레이크를 준비하는데 잠의 유혹이 강한 것 같다. 오전 9시 아침 열기 회의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월요일 오후 모두모임 시간에 길게 토론을 한다. 자율, 자유, 책임 같은 개념을 적용해서 규칙을 정해보지만 시행착오을 거듭한다. 그래도 아이들이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지키려는 연습을 하도록 기회를 충분히 주고 기다리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렇게 해야 진심으로 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모두모임 회의 모습

▲생활 규칙

4월 마지막 주에 봄 학기 평가를 하고 5월 첫 주에 봄방학을 가졌다. 아래는 학생들의 소감문이다.

“목도나루학교에 오기 전까지 배움은 교과 공부, 시험 공부, 교사가 주도하는 공부였고 하라는 대로 하거나 하지 않거나 했는데 목도나루학교에서 배움은 책임감, 독립성, 협동심, 의미 있게 시간 보내기 등이었다.”

“내가 농사일도 좋아하는구나 싶고, 일을 하면서 상쾌함을 느꼈다. 텃밭을 가꾸면서 근력을 키웠고 멘탈이 강해졌다. 배움이 즐겁다는 걸 확인했다.”

“맥락에 맞게 이야기하고 의견을 잘 전달하는 것을 배웠다. 말하기를 하면서 경청과 배려를 배웠다. 의문을 가지기도 배웠다. 하루 닫기를 통해 성찰하는 것도 배우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통해 생각도 다양해졌다.”

위와 반대로 부정적인 반응을 전한다.

“자꾸 생각을 하라고 하니 어렵고, 생각할 시간을 넉넉히 주지 않고 자꾸 말하라고 하니 힘들었다.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면 좋겠다. 피드백할 때 질문을 너무 예리하게 해서 말하기가 어려웠다.”

“길잡이와 학생 사이의 일 대 일 상담이 많았으면 좋겠다. 갈등이 있는 친구가 있을 때 상담이 필요하다. 친구들이 자기만 생각하지 말고 타인을 존중하고 공감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

이런 부정적인 반응이 조금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봄 학기를 보낸 학생들은 만족스런 표정이었다. 평가회에서 모든 학생이 발언할 수 있었고 학기 초에 견주면 활발하게 이야기하는 학생 숫자가 훨씬 많아졌다. 하지만 ‘배움을 위한 몸과 마음 만들기’라는 봄 학기의 목표를 얼마나 달성하였는지에 대한 교사들의 평가회 시간을 갖지 못해서 아쉬웠다.

배움을 위한 몸을 만드는 일만 보더라도 평가하기 쉬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몸을 만든다는 표현을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진득하게 책을 읽거나 긴 시간 동안 토론을 견딜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한다면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날씨, 장소, 주변 사람의 분위기를 몸으로 느끼고 대처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을 위한 별도의 교육과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교육자 우치다 타츠루 교수는 합기도장을 열고 무예와 인문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외부 상황과 다른 사람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몸을 수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몸의 감각과 직관을 사용할 줄 알아야 변화와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고 직관을 사용하기보다 이성과 논리를 키워주려는 교육자가 많다. 하지만 불확실성과 불안에 지배당하는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몸의 감각을 살려서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데 우선 집중해야 한다고 한다. 몸의 여러 가지 반응을 살피면 자신의 욕망을 억압, 회피, 왜곡함으로써 여러 증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를 보살피는 노력을 하기보다 자극성 있는 음식과 영상매체가 주는 위안에 빠지는 것이 유행이다. 몸의 감각을 되찾는 문제는 스피노자와 들뢰즈 같은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표현예술 또는 자연과 교감하는 활동을 하면서 풀어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텃밭 만들기

목도나루학교에서는 봄 학기부터 텃밭, 온돌 만들기, 연극 수업을 하고 있고 가을과 겨울에는 승마와 숲치유 프로그램을 적용하려고 한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전하기로 하고 이만 줄인다. 

▲온돌 만들기